프레임 전쟁에서 완패한 한국교회, 다시 기회는 왔다

  • 입력 2021.06.15 23:47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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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살리기 위해 메신저에 인공호흡이 필요

이미지 프레임 구축, 세력의 크기가 정의를 말한다

세상의 정의가 하나님의 정의를 피고석에 세운다

정치(politics, 政治). 자기편에게는 가장 우호적인 단결과 협력을 제공하고 상대편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스스로의 의지에 상대방을 복종시키고 상대방을 통제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질서를 유지·강화하는 작용을 말한다.(두산백과)

정치는 국가를 다스리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부딪히는 모든 것에 정치가 있다.

오늘날의 정치는 프레임 전쟁이다. 단순히 내가 옳고 당신이 그르다가 아니라 내가 옳기 위해 그에 필요한 환경을 만든다. 이것이 서로의 진영을 구축하고 당위성을 만들어내며 논리의 성을 쌓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편 만들기’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득력을 발휘하여 동조하는 세력을 키워가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 최소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것이 권력이자 힘이다.

‘교회에 헌금하면 목사가 다 가져간다’

‘교회는 왜 세금을 내지 않는가’

‘기독교가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교회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의 주범이다’

한국교회가 들으면 뒷목 잡을 말들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다’고 불평한다. 그게 끝이다. 잘못된 정보라며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힘을 얻지 못하고 볼멘소리로 치부되고 만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 말들을 비판없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수긍한다. 이미 프레임 전쟁에서 한국교회는 완패하고 말았다.

한국교회, 추락의 시작은 어디인가?

사실 오늘날의 추락한 한국교회의 위상은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평가된다. 어느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약육강식. 세상은 본래적으로 약자를 가만 두지 않는다. 드러난 약점은 비웃음의 실마리가 된다.

한국교회는 과거 전성기를 누렸다. 교회 문만 열어놓으면 성도들이 몰려들던 시대가 있었다. 그랬던 성장세가 큰 타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한다. 세상은 샘물교회 사건을 여전히 기억한다.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를 떠났던 샘물교회 성도들이 피랍되어 목숨을 잃은 비참한 사건이다.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갑작스러운 위기 앞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사랑과 복음을 외치던 교회가 비겁하고 추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형성되어 있던 교회의 권위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선을 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교회를 향해 ‘개독’, ‘먹사’, ‘똥경’이라는 표현이 생겨나며 인터넷을 중심으로 안티기독교가 확산세에 들어섰다.

세상 앞에 샌드백이 된 한국교회

한국교회는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하나님이 주신 시그널을 포착하고 상생의 길, 공교회로의 길로 나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대사회적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명예와 이익을 좇아 서로 싸우느라 세월을 낭비했다. 그렇게 한국교회의 미래는 안개 속으로 진입했다.

힘과 결집력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앞에 세상의 도전은 계속됐다.

동성애 문제가 촉발됐고, 수쿠크가 교계를 깜짝 놀래켰다. 이슬람 이슈가 불거지는가 하면 종교인과세까지 몰아치는 와중에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한국교회연합으로 분열했고, 한국교회총연합으로 중심이 옮겨갔다. 분열은 분열을 낳았고, 한국교회의 위상은 점차 추락했다.

한국교회를 뒤흔들 이슈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도 대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연합기관은 무기력했고, 오히려 시민단체 또는 별도의 테스크포스(TF)팀이 나서서 수습을 하는 ‘웃픈’ 상황들이 연출됐다.

이를 지켜보던 세상은 한국교회를 ‘오합지졸’로 여겼다. 교단만 300여개에 걸핏하면 이단이니 삼단이니 서로 싸우고 있으니 생각만해도 머리 아픈 집단이 되고 말았다.

세상은 이제 마음 놓고 한국교회를 샌드백처럼 두들긴다. ‘내 편’이라는 세력을 구축하고 한국교회를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끌어들인 세상은 공평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종교인과세를 시행했고, 국민건강을 앞세워 예배를 제한했다. 평등을 외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고, 소외된 소수를 보호한다며 건강가정기본법을 추진하고 있다.

‘세상이 말하는 정의’의 심판대에 한국교회를 피고로 세워놓고 ‘하나님의 정의’를 공격하고 있다.

메신저를 다시 살려야 한다

세상이 이처럼 교회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시지가 신뢰를 얻으려면 메신저에 대한 신뢰가 먼저 담보되어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 하나님의 정의가 부딪힐 때, 승패는 메신저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

세상은 그동안 한국교회의 신뢰성을 떨어뜨려왔고, 한국교회의 메시지는 세상에서 영향력을 잃었다. 복음은 외면받았고, 기독교인들조차 교회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세상 권세를 잡은 마귀의 책략은 성공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한국교회 리더십들이 대부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인지하고 있는 소수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 감거나, 힘이 없어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깨우친 선각자 몇몇이 한국교회가 다시 하나 되어야 한다고 목놓아 외쳐왔지만 그동안 이러한 소리는 사사시대 선지자의 외침처럼 공허한 메아리가 되곤 했다.

메시지가 다시 힘을 얻기 위해 메신저를 다시 살려야 한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한국교회는 마지막 기회를 잡아야 한다.

통합의 당위성은 무르익고 있다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시고, 세상의 모든 교회는 지체가 된다. 이처럼 지상의 모든 교회는 결국 하나다. 다리 하나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 애써도 다른 부분들이 외면하면 결코 나아갈 수 없다. 팔 하나가 헤엄치려 한들 나머지 사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물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한기총과 한교연, 한교총, 교회협.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분열과 부침을 거듭하며 4분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연합기관 통합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러 조건들이 제시되고 수용되며 협상 막바지까지 이르렀다가도 결국 무산되는 배경에는 자기 밥그릇은 기어코 챙겨야겠다는 연합기관 실무자들의 욕심이 배태되었다.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 코로나19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급속화했다. 지금처럼의 분열상으론 패가망신을 면치 못할 지경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연합기관 관계자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고, 한국교회 연합기관 통합의 당위성은 점차 무르익고 있다.

‘원 보이스 원 리더십’

그 중심에는 한교총이 있다. 현재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한교총이 통합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은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대표회장을 잃고 직무대행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한기총, 주요 교단들이 떠난 채 위축된 한교연은 실상 명분과 계기만 주어진다면 3자간 통합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위기 앞에 생존을 위해 기업들도 합병을 선택하듯이, 한국교회의 최대 위기 앞에 연합기관의 통합은 절실한 과제다. 한국교회 대다수 교단들을 포용하며 하나의 리더십으로 협력을 구하고, 세상을 향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원 보이스 원 리더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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