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환 칼럼] 성물을 통해 주신 교훈

  • 입력 2021.06.24 17:20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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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신학교 동기생 중 좀 나이가 많으셨던 P 전도사님은 일찍 부천에 개척해 목회하면서 신학교를 다니고 계셨다. 어느 날 그분이 전화하셔서 ‘교회는 월세를 못 내서 문 닫고, 지금 길에 짐을 내놓고 서 있는데 해는 지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끝까지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뭔가 예비해 둔 것이 있으리라 믿고 기다렸는데 날짜가 다 되었고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다며 이제 어떡하느냐고 했다. 나는 일단 우리 교회로 오시라고 흔쾌히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쓴웃음이 났다. 우리도 똑같은 일을 경험했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우리 교회에서 임시로 사시게 되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 있어서 네 식구였다. 사택이라곤 방이 한 칸뿐이어서 그분들에게 방을 내어주고 아내와 나는 선교원 한쪽에 책상 하나 들어가는 작은 사무실에 거처하게 되었다. 저녁이면 이불을 들고 가서 자고 아침이면 다시 방에 갖다 놓으며 지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부살이 경험을 먼저 하게 하셔서 이분들을 섬길 수 있는 준비를 시키신 것이리라. 그런데 이분들의 이사는 생각지 못한 일이 되었다.

교회를 하다가 문을 닫고 온 것이어서 피아노를 비롯해 필요한 성물들이 다 있었다. 강대상과 장의자 6개, 지휘대까지, 보관해 둘 곳이 바로 성전이니 제자리를 찾은 듯 정말 근사한 교회 모습이 갖추어졌다. 그리고 아내와 둘이서 예배드리다가 그분들 가족이 함께 드리니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주일 학생도 2명이 생긴 것이니 아이들 전도 나가서도 힘이 났다. 아무것도 없어 설립 예배를 드릴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그런대로 예배실 모습이 갖춰졌으니 이제 설립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을 했다. P 전도사님 성물로 꾸민 예배실에서 1988년 11월 15일 설립 예배를 드린다고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노회장님 교회에서 성가대 5명을 보내주셔서 성가대를 세우고 설립 예배를 드렸는데 얼마나 좋던지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모 교회에서 오래 성가대를 했건만 예배에 성가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으며, 교인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가장 먼저 성가대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우리 교회 수십 명 성가대가 노회장님의 연합행사에 가서 찬양하게 되어서 더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시고, P 전도사님은 이제 인천의 어느 교회에 협동 사역을 하러 가시게 되었다.

“기존교회로 가시는 것이니 당장은 이 성물들이 필요하지 않으실 텐데…. 혹시 다시 개척하실 때까지 우리에게 그냥 맡겨두시면 좋을 텐데….” 별 염치없는 마음들이 속삭이고 있었지만, 그저 마음뿐이었다. 선교원 사무실에 누웠는데 심란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저 성물들 다 가지고 가시면 우리 교회는 다시 빈집이 되는데 어떡하나…뒤척이는 내 등에서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염치없지만 저 지휘대라도 하나 주고 가시면 강대상 대신 쓰면 좋은데 우린 당장 강대상이 없어 어떡해요?” 나는 사실 그분들이 가진 것 중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성화 액자가 참 마음에 들었다. “혹 저거라도 선물하시고 가시면 좋은데…” 사람이 너무 없다 보면 염치까지 없어지나 보다. 공짜를 바라는 우리는 그 밤 내내 심란해 잠을 설쳤다. P 전도사님은 시골에 있는 땅을 팔려고 내놓은 상태인데, 곧 팔리면 바로 다시 개척할 것이라며 성물들을 다 싣고 이사를 하셨다. 당연한데… 있던 것이 다 없어지고 휑하니 빈 건물만 다시 남게 되자 개와 고양이 전에 가졌던 좋은 보물이 다 없어지고 다시 초가집에 살게 된 할머니처럼 우리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 당장 새벽기도도 해야 해서 다시 뒤주를 강대상 자리에 갖다 놓고 보니 왠지 더 초라한 마음이었다.

몇 주 뒤 아는 분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의 어떤 개척교회가 문을 닫게 되어 성물을 20만 원에 판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강대상과 장의자 6개 그리고 앰프, 내가 얼마나 갖고 싶던 것들인가! 가서 보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모양 좋은 강대상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이것을 두고 우선 기도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기회를, 하나님께 축복의 씨앗을 심을 이 좋은 기회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 고민했다. 그리고 어쨌든 우리 교인이 심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내의 친구로 우리 선교원에 와 유일한 성도가 된 그녀에게 헌물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기꺼이 그 헌물을 하였다. 성물들을 실어 와서 예배실을 꾸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이렇게 헌것으로 교회를 채웁니다. 성도들을 보내주셔서 우리 교회 성도들의 손길을 통해 모든 것을 새것으로 채워주세요. “그리고 정말 그 기도대로 우리 교회는 몇 년 뒤, 모든 것을 새것으로 단장하는 날이 오게 되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성화 그림까지 사서 걸었다. 그때의 그 감격과 감사는 나만이 아는 이런 사연들로 인해 몇 배 크고 값진 것이었다. 거의 십 년 뒤쯤, 나는 삼각산에 40일 철야 산 기도를 다니다가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P 전도사님을 우연히 만났다. 그간 별 왕래 없이 소식이 끊어졌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원래도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셨는데, 10년째 삼각산에 매일 밤 이렇게 기도하러 오신다고 하셨다. 근황을 물으니 아직도 땅이 해결이 안 돼서 개척을 못 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아내는 제일 먼저 그 성물들의 행방을 궁금해했다. 나는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개척하게 되실 때까지 우리 건물 옥상에 임시로 보관해 드리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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