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일산주님의교회 김원수 목사가 살았던,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건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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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주님의교회 김원수 목사가 살았던,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건 목회

기사입력 2021.07.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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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이들은 저마다의 사역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중에 목회를 택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교역자로 사역할 것인지, 개척할 것인지 기로에 서기 마련이다. ‘맨땅에 헤딩한다’ 오늘날 교회 개척을 두고 흔히 회자되는 말이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비전이 있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화려하고도 조금은 더 쉬워보이는 길로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찾으시는 한 영혼이 어렵고 힘들어보이는 길, 누구나 가기 꺼려하는 그곳에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 탄탄대로를 버리고 굳이 어려운 길로만 찾아들어가 생명의 꽃을 피워온 목회자가 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바보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부르심을 따라 오직 주님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온 일산주님의교회 김원수 목사의 목회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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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십자가 없는 개척지를 찾아


“제가 섬겨야 할 곳, 있어야 할 곳, 죽어야 할 곳으로 인도해주소서.”


1994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었던 김원수 목사가 용문산기도원에서 하루 세 번 주님 앞에 엎드려 드린 기도다.


사람이 많은 곳, 개발이 한창인 곳, 교회 십자가만 달면 성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만한 곳은 그가 갈 곳이 아니었다. 김 목사는 ‘교회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섬기겠다’고 기도하며 시골 축사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마석으로, 용인으로 교회 자리를 찾아 걷고 또 걸었다. 일산은 이미 교회가 많았기에 애초에 그의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 일산에서 김 목사가 ‘이곳이 교회 터’라고 확신한 곳. 그곳이 바로 지금 일산주님의교회 자리다. 


“앞, 뒤, 옆이 모두 산밖에 없는 곳에 논이 있는데, 그곳만 벼가 누렇게 익은 채로 드러누워 있었다. 벼 이삭 하나하나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영혼들로 보였다. 저 벼들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교회, 가정을 살리는 교회가 되리라’ 다짐하며 교회 부지로 선포했다. 그렇게 10평짜리 하얀 텐트를 치고 십자가를 세웠다. 그게 시작이었다.”



아파트를 팔아 논을 사다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다. 김원수 목사는 당시 굴지의 벽산그룹 산하 벽산건설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다. 회장님의 깊은 신임 속에 승진과 사회적 성공은 예견되어 있던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김 목사로 하여금 세상의 좋은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부르심의 길을 택하게 만든 계기가 무엇일까.


김원수 목사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예수를 몰랐다. 직장예배의 효시 벽산건설에 입사해서 퇴사하기까지 20년. 10년째 되던 어느날, 그는 성령세례를 통해 불같이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너는 내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김 목사는 “바로 거기가 내 인생의 시작이었다”고 고백했다.


불세례를 받고 방언이 터진 김 목사는 전도하는 인생으로 변모했다. 교회에서 3년 내리 전도왕을 차지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치열하게 신학을 공부했고, 용문산기도원에 올라가 1평짜리 천막에서 하나님만 붙잡고 ‘섬길 교회를 달라’고 간구했다. 교회가 하나도 보이지 않던 일산 변두리, 이곳에서 김 목사의 울음의 목회가 시작됐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라.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으로 가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황무지를 택하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지만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되라.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 배우자가 반대하면 틀림없다. 왕관이 아니라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어쩌면 그리도 자신에게 혹독하게 엄격했을까. 한 사람이라도 보내주시면 감사함으로 목회하겠다는 마음으로 1997년 3월16일 일산 변두리 논밭에 10평짜리 하얀 텐트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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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몬의 유혹과 핍박에도 지켜낸 교회


길도 없고,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심지어 물도 없었다. 우물을 파서 3년 동안 물을 길어 마시고 있자니 그제서야 수도시설이 들어왔다. 흙으로 벽돌을 하나하나 찍어 교회를 세웠다. 기둥 하나 없이 벽돌 수천 장을 쌓아올리며, 김 목사는 벽돌 하나에 영혼 하나를 마음 속에 그려넣었다. 척박한 곳에서 목회하면서도 두려움은 없었다. 


하나님만 보고 열정으로 기도하며 인생을 하나님께 걸었다. 영성으로는 충만했지만 현실은 절망이었다. 

그렇게 10년. 일산 변두리 촌구석, 일산주님의교회가 위치한 곳까지 개발이 된다는 소문이 들렸다. 개발소식은 교회를 향한 핍박과 함께 왔다.


‘비싼 값에 땅을 팔아 더 큰 교회를 지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김 목사에게 이 땅은 응답받은 교회터요, 수많은 믿음이 생명의 뿌리를 내린 곳이었다.


‘교회가 알박기한다’, ‘벽산건설에 있던 사람이라 다 알고 온거다’, ‘더 많이 받으려고 버틴다’는 둥 교회 자리가 개발 명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회 자리만 내놓으면 아파트 40채는 더 지을 수 있다며 온갖 유혹과 협박도 많았다.


김 목사는 “돈 욕심을 냈다면 최소한 수십억 자산가가 되어있을 거다. 하지만 오직 심겨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자는 마음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마음이 찢어지고 가정이 깨어진 사람들을 보듬고, 오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로, 그렇게 일산주님의교회는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촌부들과 함께 일으킨 제자훈련 목회


유혹을 뿌리치고 교회를 지켜낸 보람은 확실했다. 수많은 영혼들이 이곳에서 예수를 만났고 구원을 얻었다. 일산주님의교회 성도 80%는 여기서 예수를 믿은 불신자들이다.


“사람을 많이 모으려면 인간적인 방법도 많겠지만 나는 세상의 요행을 따르기보다 오직 불신자에게 잘했다. 계급장을 달고 수평이동으로 찾아온 기존 신자들은 우리 교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가기 일쑤다. 처음부터 그랬다. 땅만 보고 살던 촌부(村夫,村婦)들이 모여 예수 안에서 변화받는 곳이 우리 교회다.”


그래서 일산주님의교회 성도들은 순수하다. ‘우리 교회가 최고’다. 애초에 권위란 없는 아저씨 같은 김 목사와 함께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예배공동체를 이뤄가고 있다.


교회마다 코로나 팬데믹이 위기라고 아우성이던 때에도 일산주님의교회는 건재했다. ‘한 번의 예배를 드려도 목숨을 건다’는 김원수 목사의 가르침에 따라 성도들은 하나같이 예배를 사모했다.


그렇다고 방역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김 목사는 주일예배 참석인원이 10%에 불과할 때, 역발상으로 예배 횟수를 늘렸다. 주일에 최대한 예배를 많이 드림으로써 가능하면 모든 성도들이 예배당을 찾을 수 있게 했다.


김 목사는 “죽든지 말든지 목숨 한 번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쉴 새 없이 설교했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는 마음이었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지혜를 주셨고, 성도 90%가 대면예배를 드림으로 예배가 끊이지 않는 교회가 됐다. 성도들이 너무 좋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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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을 자리, 저 돌 하나


일산주님의교회에는 멋드러진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옆 가로 세로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돌 하나. 김 목사는 그곳이 자신이 죽어서 묻힐 자리라고 말했다. 시쳇말로 이 교회에 뼈를 묻겠다는 뜻이다.


넥타이 없이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김 목사는 스스로 아호가 ‘논두렁’이라고 말했다. ‘내가 목사다’라고 목을 세우기보다 ‘내가 종이다’라며 함께 부대끼고 고민하고 살아내는 목회가 체질이다.


길도 없던 논에서 천막으로 시작한 교회는 성도들과 9번의 크고작은 건축을 함께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교회의 자랑인 카페도 동네 사람과 성도들이 함께 설계해서 지었다. 그렇게 목회 여정이 다할 때까지 김원수 목사는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곳에서 충성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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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와 해외선교


지역사회에 30년 가까이 깊이 뿌리내린 일산주님의교회는 다음세대와 해외선교에 주력하면서 나라 안팎으로 사명을 다해간다는 계획이다. 


김 목사의 아호 ‘논두렁’을 딴 ‘광야논두렁학교’는 일산주님의교회의 유명한 다음세대 양육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하기 전에 교회에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기도와 축복을 받으며 학교로 향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양육하며, 역사교육을 통해 나라사랑과 투철한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다.


아울러 베트남과 미얀마, 태국을 향한 해외선교도 계속될 예정이다. 일산주님의교회는 베트남에 뻐쓰응일산주님의교회와 본자디일산주님의교회를 설립하고 현지인 목회를 통해 그들의 교회로 세워져가도록 후원하고 있다.


김 목사는 “미얀마와 태국도 매우 중요하다. 아직까지도 복음을 기다리는 영혼들이 여전히 있다. 그곳을 향해 복음 들고 나아가는 일산주님의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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