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소강석 칼럼] “저도 여전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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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저도 여전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8월 둘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기사입력 2021.08.0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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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3’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동선을 잃었다 / 아침마다 핸드폰에 뜨는 확진자 문자 / 누군가의 동선 / 매일 우리의 식탁에는 / 불안과 우울, 의심과 회의가 오른다 / 혼자 있고 싶은 외로움마저 통제하는 / 낭만과 방랑의 소멸 사회 / 11시 산에 오른다 / 그 누구도 나의 동선을 추적할 수 없는 /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

 

이 시는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자유와 관계마저 통제 받아야 하는 시대를 향한 정서적 저항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끊임없이 방역본부와 소통하고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정부에 협조적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단에 한 어른이 계시는데 이 분이 걸핏하면 소 총회장 뭐하느냐, 정부와 좀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르신, 제가 싸울 테니까 어르신이 대신 가서 협상하세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제가 당장 피켓 들고 나가겠습니다.” 그랬더니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도 화가 나서 그런 거지...”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해 온 사역을 설명 드렸더니 나중에는 오히려 그 분이 제 팬이 되셨습니다. 그 후론 다른 사람이 저를 공격하면 오히려 소 총회장이 지금까지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해 왔는데 당신들이 그런 고충과 노력을 알기나 하느냐고 대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코로나 상황에서 누군들 저항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최근에 와서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 하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저항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주나 상해로 가서 직접 몸을 바쳐 독립투사가 되기도 하고, 윤동주 같은 시인은 심미적 저항시를 썼습니다. 저 역시 합동 총회장이나 한교총 대표회장이 아니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방역본부와 대화 채널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잘못된 방역대책에 반대하고 저항하면서도 계속 소통하고 합의점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4차 대유행만 아니었다면 거의 50% 가까이 한국교회의 예배를 회복할 수 있는 협상의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일 1800, 1900여명에 달하는 확진자들이 나오면서 무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저는 제 위치를 지키면서 교회의 내적, 외적 결집력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생산적 저항, 전략적 저항, 미래적 저항의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방역 4단계로 예배 인원이 20명 이내로 제한되자, 바로 그 주부터 예배를 총 7번 드렸습니다. 예배마다 1000여명의 성도들이 화상줌과 라이브 톡으로 참석하였고 유튜브는 평균 4000~5000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모든 예배를 제가 직접 인도했습니다. 사실 유튜브로 예배를 송출하면 두세 번만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화상줌을 통해서 한 성도라도 더 페이스 투 페이스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4주 연속 특별새벽기도회와 특별저녁기도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코로나의 심각성과 위기감을 알기 때문에 온 성도들을 더 강력하게 묶고 거룩한 부족공동체, 초연결 슈퍼 처치를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핸드폰 문자를 확인 못한 것이 1600개 정도 됩니다. 작년 연말에 핸드폰을 교체해서 올해 1월부터 온 문자 중에 읽지 못한 것이 900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 읽어봤는데 불특정 다수로부터 오는 문자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문자를 보면 분노가 생기고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정심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과격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스트림하게 나가는 사람은 잠시의 포퓰리즘은 일으킬 수 있지만 시대를 바꾸거나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자제하고 컨트롤을 하면서 저의 위치에서 저항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산토기 잡으려다 집토끼를 잃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의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4주 연속 7번의 주일예배와 특별새벽집회, 저녁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우리 교회가 보여준 생산적, 전략적, 미래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부의 일방적 방역대책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항을 하더라도 생산적, 전략적, 미래적 저항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어느 교회가 가장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부흥하며 시대를 선도하게 될지 역사가 말 해 줄 것입니다.

 

결코 아군끼리 서로 총질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는 END가 아니라 스토리와 다양한 간증을 머금은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야 합니다. 코로나의 폐허 위에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라는 꽃봉오리 하나를 피워내는 것도 더 아름다운 저항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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