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면 아래 가라앉은 이야기

  • 입력 2021.08.20 17:4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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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갇힌 세월이 길어지고, 대면 예배가 오래 중단됨으로 인하여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한 가지 유익(?)을 찾는다면 논란이 적지 않았던 교회 세습(世襲)에 관한 공방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 아니냐 하는 좀 씁쓰레한 뒷얘기가 뜻 있는 몇몇 인사들 가운데 오가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과 같은 주변 환경이 엄중한 시국에 차마 드러내놓고는 하지 못하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보니까 어쩌면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매우 다행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것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뿐이라는 점은, 언젠가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아마 혹자는 코로나 사태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령(妄靈)된 추측을 해보기도 한다. 기왕 논란이 잠시 가라앉고 멈추어 선 김에 ‘왜 세습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더러는 말하기를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그만한 큰 교회를 이루었으니 그 눈물과 수고를 생각해줘야 옳은 것 아니냐는 그럴싸한 명분을 말하기도 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접근을 하자면 그것이 과연 누구의 것이길래 그러느냐는 반문(反問)에 부딪힐 수 있다. 즉 우리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 앞에서는 무어라 말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시는 방향대로 쓰임을 받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것을 재산적 가치로 생각해서 그것이 ‘내 것’이라고 하는 욕심이 부른 결과로 밖에는 보기 어렵다. 세습(世襲)이란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후손들이 대대로 물려 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용어마저도 더러는 계승(繼承)으로 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업어치나 메어치나 그것이 그것이라면 과연 무엇이 정답이냐 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내 자식이 아니면 믿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업적과 공로에 한치의 흠이 생기지 않게 잘 보존해 줄 것이라고 하는 욕심 때문이요, 업적과 공로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내’가 한 것이라고 하는 퍽 불순한 욕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이름이 나야 한다?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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