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절차’ 들고나선 한교총, 통합할 마음은 있는가

  • 입력 2021.08.26 23:52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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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 이하 한교총)이 8월26일 기관통합준비위원회(위원장 김태영 목사)를 열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임시대표회장 김현성 변호사, 이하 한기총)가 제시한 ‘톱다운 방식’의 통합 추진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통합 논의와 추진은 하되, ‘선 논의 후 통합’이라는 절차를 반드시 지켜갈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선 논의’ 과정에서 통합이 번번이 실패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과거 실패의 과오를 또다시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한교총은 이날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한 후 기관통합준비위원회 서기 지형은 목사가 기자들 앞에 브리핑을 위해 나섰다.

지 목사는 먼저 △현재 한국교회 상황을 살펴보면 한교총, 한기총 한교연 세 연합기관의 통합이 필요함을 깊이 인식하고 세 기관의 통합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 △2021년 10월31일까지 통합을 위해서 노력한다 △이 통합과 관련해 한교총에서 4인의 대표를 선정해 실무적인 통합을 위한 협의와 의논을 진행한다는 세 가지 결의사항을 전달했다.

한교총 4인의 대표는 기관통합준비위원회 위원장 김태영 목사와 최종호 감독, 지형은 목사에 대표회장 소강석 목사를 포함했다. 한교총에서는 한기총 및 한교연과 통합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네 명이 대표로 활동할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지 목사는 브리핑에서 “기관통합준비위에서는 톱다운 방식의 통합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한교총에서는 기관통합준비위원회가 구체적으로 논의하여 결론을 내리면, 한교총 미래발전위원회에 보고하고 결의한 뒤, 상임회장단회의에 보고하여 또다시 결의 과정을 거친 후, 한교총 총회에 올려 최종 결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쯤 되면 하지 말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기관통합준비위원회 결의사항 두 번째가 ‘10월31일까지 통합을 위해서 노력한다’인 점을 살핀다면, 두 달 남짓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 기간 동안 공식적인 절차를 모두 밟아서 과연 연합기관 통합을 완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10월31일까지’라는 기한에 대해 지 목사는 “세 기관이 통합한다고 할 때 무엇이 걸림돌인지,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뭔지 모두가 알고 있다. 지나치게 오래 끌고 갈 필요가 없기에 일정한 기간을 정해야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판단에 기한을 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브리핑에서 언급하기도 했듯이 장로교단을 포함한 많은 교단들이 9월에 총회를 치러내야 하고, 각 교단별로 산재한 문제에 휩싸이다 보면 기관통합준비위원들이 서로 모이는 시간과 장소 조율조차 쉬운게 아니다. 논의하고 협의하고 결론을 도출하여 결의까지 해야 한다. 게다가 이 과정을 기관통합준비위원회와 미래발전위원회와 상임회장단회의와 정기총회까지 네 번을 거쳐야 한다.

기관통합준비위원회 구성원들은 각 교단 내에서 정치와 행정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기에 회의 과정이 어떠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과연 이 기간 안에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하는 척만 하다가 말겠다는 심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 목사는 “기관통합준비위원회는 7개 교단 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누구의 주도로 톱다운 방식으로 결정하고 나머지 자잘한 문제는 나중에 해결한다는 식으로는 진행될 수 없다”고 했다.

한교총은 이날 기관통합준비위원회를 열어 과거 통합 실패의 요인을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 한기총이 대표회장들끼리 합의를 내리고 실무라인에서 뒷받침하는 ‘톱다운 방식’의 통합을 제안한 까닭은 임시대표회장 김현성 변호사가 그동안의 실패 원인을 명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교총의 목사들은 절차를 따지며 또다시 회의(會議)가 회의(懷疑)가 되는 길로 들어서려 하는 모양새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예배와 신앙까지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기반으로 연합기관 통합을 통한 ‘원리더십’ 수립과 ‘원메시지’의 필요성을 절감해 왔다. 하지만 이날 한교총 기관통합준비위원회의 결의 내용은 과연 이들이 오늘날의 심각성을 함께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만큼 연합기관 통합의 열망을 품은 한국교회에 실망감을 안겨주고 말았다.

이날 한교총 기관통합준비위원회의 브리핑 내용이 전해지자 한 연합기관 관계자는 “마치 율법에 매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 같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힐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기관 통합은 반드시 완수되어야 한다. 연합기관 통합을 위한 당위성과 필요성, 여러 가지 조건들까지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큰 시기이다. 한기총과 한교총, 한교연이 정기총회를 개최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절차를 모두 따지자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조건없는 대통합을 이루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지금 상황에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세상 속에 연합기관이 존재하는지를 깨닫는다면 절차와 단계를 따질 것이 아니라 회원교단들의 이해와 양해를 적극적으로 구해가면서 대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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