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국 칼럼] 올곧음

  • 입력 2021.09.10 09:0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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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선비들의 글 중 김수팽전(傳)이라는 짧은 글을 읽었다. “김수팽은 영조 때 사람이다. 호걸스러운 성격에 큰 절개가 많아, 옛 열장부의 면모가 있었다. 그는 호조의 서리가 되어 청렴결백으로 자신을 지켰다. 그의 동생은 선혜청 서리였다. 일찍이 김수팽이 동생의 집에 들렀는데 동이들이 마당에 줄지어 있고, 검푸른 흔적이 군데군데 있었다. ‘무엇에 쓰는 것인가?’하고 물으니 아우가 말하였다. ‘아내가 푸른빛 염색업을 합니다’ 그러자 수팽은 노하여 아우를 매질하였다. ‘우리 형제가 모두 후한 녹을 받고 있는데, 이를 업으로 한다면, 저 가난한 사람들은 장차 무엇을 생업으로 하겠는가?’ 곧 동이를 엎어버리게 하니, 푸른 염료가 콸콸 흘러 도랑에 가득찼다.” <알아주지 않는 삶> 인용. 같은 글에 어머니 일화도 나온다. “어린시절에 집이 가난하여 어머니가 몸소 불 때고 밥 짓는 일을 하였다. 어느 날 부엌 아궁이 밑에서 숨겨진 금덩이를 담아둔 항아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즉시 전과 같이 묻어 버리고는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때 비로소 남편에게 말하기를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금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 그대로 눌러있으면 금이 묻혀있는 곳에 마음이 항상 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런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수팽과 같은 아들을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옛 선비들은 관료사회의 청렴도를 사불삼거(四不三拒)란 불문율로 측정하였다. 해서는 안 되는 사불(四不)은 ①부업을 갖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부업이라도 갖게 되면 부패해진다고 믿었다. ②재임 중 재산을 늘리는 것이다. ③재임 중 집을 늘리는 것이다. ④재임 중 그 고을의 특산물을 먹는 것이다. 거절 해야 되는 삼거(三拒)는 ①높은 세도가들의 부당한 청탁이다. ②친지의 합당한 청을 들어준 다음에 답례이다. ③재임 중 이유 없이 재물을 받는 것이다. 전에 모 인사가 청문회 도중 낙마하는 사태도 보았다. 도덕성, 청렴성의 문제에 걸렸다. 성경에는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했다.지금 우리사회는 강직함과 올곧음을 점점 찾기가 어렵다. 청렴성을 지켜야 할 사람이 청렴성을 잃고 있다. 무엇보다 순수함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 순수에서 이탈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점점 혼란과 어지러움이 나오는 것이 아니가? 정치현실을 보면,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거나 인물이 출현하면, 사람들이 서서히 줄을 선다. 연을 닿으려고 제스처를 한다. 줄타기를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솥에 밥을 먹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서로 으르렁대며 앙숙이 되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어찌 정치판에만 있는 것이랴!. 신성시해야 될 교회 안에도, 거룩해야 할 세계 안에서도 버젓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인간사회에 마지막 희망과 보루는 다름 아닌 종교라고 한다. 지성의 상아탑이라고 하고 전당이라는 대학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지식이 돈 앞에 맥을 못 춘다. 진실이 돈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거룩과 신성함이 점점 세속에 떠밀려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듯 세상의 흐름을 어찌 거스르랴.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세월이 빠르고 세상이 급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고, 변해도 될 것이 있지 않는가? 적어도 우리가 옛 선비 같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하는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왜 그렇게도 쉽게 양보를 하는지 모르겠다. 탁월하지는 못해도 우리는 가장 기본 되는 것만큼은 지키자. 고수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상식선에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상식을 지키지 못하고, 예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서야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도리를 다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도리를 다한다. 말을 쉽지만 사실은 어려운 것이다. 이제부터는 도리를 아는 자. 도리를 다하는 자로 남아보자. 우리는 누구인가? 주님을 주인으로 삼고 사는 자이다. 그렇다면 그 주인을 상황이 변해도 따르고 좇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는 나의 주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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