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훈 칼럼] 31. 네팔리우스

  • 입력 2021.09.18 09:1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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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그리스어 네팔리우스(νηφαλίους)를 칼뱅은 ‘술 취하지 말라’고 번역하였다. 원뜻은 ‘절제’로 매사에 언행심사를 조심하라는 말이다. 알코올 중독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사회적 질병으로서 그 피해와 해악이 심각하다. 마약처럼 엄히 통제하고 전염병같이 대처해야 한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맞다. 술주정뱅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교회가 먼저 그 계도에 앞장서야 한다. 동생은 폐결핵 후유증으로 몸이 쇠약하여 애당초 술과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 전별 회식이 시작되자 제대를 하루 앞둔 병사에게 술잔이 집중되었다. 술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 그는 한껏 고무되어 맘껏 마시고 인사불성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민족 축제일이자 마을 잔칫날이요, 자기 전별식이니 오죽이나 했겠는가? 더욱이 그는 못된 주사(酒邪)가 있었다. 술기운이 얼근하게 오르자 까닭 없이 단체 기합을 주려고 하였다. 자기 힘을 과시하려고 크게 거들먹거리며 으스댔던 것이다. 다음날 그는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소위 필름이 끊겼던 것이다.

1980년대 군대의 음주문화는 정말 후진적이고 망국적인 고질병이었다. 그날 동생은 당일 근무자 사수로서 최선을 다했다. 불미스러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책임이 있었던바,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어떻게 하든지 만취자의 행패로부터 예하 초병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 바쿠스(Bacchus, 술 귀신) 하수인만 빼고 동생이 최고선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초병들은 동생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모한 기합을 말릴 수밖에 없었으나 결국은 동생과의 말다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는 자기 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술병을 깨어 들고 헐크처럼 변모하였다. 위험을 느끼고 동생이 무기고 뒤편으로 피하자 뒤따라가 순식간에 덮쳐 심장을 찔렀다. 그렇게 동생은 제대를 1개월 앞두고 무참히 쓰러졌다. 바닥에 피가 흥건한 채 시신을 그대로 방치하였다. 헌병이 사고 경위를 조사하여 기록한 조서 내용은 이러했다. ‘무기고 초병이 근무지를 이탈하여 축구시합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근무 중 회식에 참석하여 근무수칙을 지키지 않았으며, 회식 중 동료 초병과의 사소한 시비 끝에 싸움이 벌어져 상대방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였다.’ 참으로 기막힌 언어도단의 조합이었다.

의례적 규정을 앞세워 실체적 진실을 교묘히 덮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사건은 변사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문민정부가 지나고 국민의 정부로 이어졌다. 그동안 가려진 군 의문사 사건들의 진상이 규명됨으로써 자살과 변사가 순직으로 바뀌는 등, 억울하게 죽은 병사들의 명예가 속속 회복되었다. 나도 언젠가 동생의 명예가 회복되리라 믿고 그에 따른 자료를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수 차례 현장도 방문하였다. 그리고 때에 맞춰 진정서를 제출하였으나 외면당한 진실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능에 치를 떨며 디오니소스(Dionysos)의 술수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찌 여기시는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다. 비록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어도 천국에서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 ‘그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스스로 우정의 십자가를 졌다.’ 주님의 파레시아(Parrhesia, 정의)에 감사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20년간 보관한 자료들을 모두 소각하고 유품을 정리하였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맞지 않은가? 실로 술은 사탄의 앞잡이로서 악행의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신중하고 일구이언하지 않으며, 술 취하지 않고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아야 합니다.’(디도서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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