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교과서(3)

  • 입력 2014.12.30 14:1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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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기 목사[프로필]◈ 한동교회

요한계시록에 집중하게 된 수치스럽고 슬픈 동기

 

2. 다음 문제는 적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찾는 일입니다.

 

적을 알고 싸워야 이긴다는데 우리의 대적은 모호합니다. 시대마다 변해 갑니다. 특히 666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더욱 복잡합니다.

(1) 초대교회는 로마의 황제라고 했습니다.

(2) 중세시대 개혁파들은 로마가톨릭의 교황이라고 했고 가톨릭은 개혁자 칼뱅과 루터라고 했습니다.

(3) 세계가 두 진영,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양분되었을 때는 공산주의라고 했습니다.

(4) 대한민국에서는 신용카드가 처음 나올 때 신용카드가 666이라고 반대도 했습니다.

(5) 또 얼마 전에는 바코드가 나오자 바코드라고도 했습니다.

(6) 최근에는 베리칩이라고도 합니다.

(7) 여기에 세계 최대 교회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은 유럽

 

공동체 EC의 초대 대통령이 적그리스도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한때 ‘적그리스도 신용카드 발급을 저지하자.’ 하고 열심히 싸우더니 이번에는 ‘바코드 사탄을 박멸하자.’로 바뀌고 최근에는 ‘베리칩 시술을 거부합시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니 언제 우리의 적이 바뀔지 모릅니다. 이러다 보니 싸우다(설교하다가)정신 차려 보면 적그리스도 사탄은 벌써 다른 것으로 바뀌었으니 얼마나 허탈감에 맥 빠지는지 모릅니다.

 

3. 요한계시록 용어 해석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예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입에서 검이 나온다니 몇 개가 나오나? 한 자루가 계속 나오나? 몇 자루씩 나오는 것일까?) “그(힘센 천사)의 발은 불기둥 같고(?)”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왼발은 땅을 밟고(?)”“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이런 용어 해석이 너무 힘들어 해석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해석이나 주석 책마다 제각각이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한국 교회만이 아닌 세계 교회가 너무 골 아픈 현실입니다.

 

4. 요한계시록 내용을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하는지 어려웠습니다. 

6장부터 나오는 일곱 인 떼기의 내용이 어디까지인지? 일곱 인 떼기 안에 일곱 나팔을 포함해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 이것도 세계 교회와 신학계는 정립이 안 된 상태입니다. 그러니 목회자인 저로서는 당장 다음 수요예배에서 설교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퇴양난에 처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강해를 이대로 계속할 것인가? 중단하고 포기해야 할 것인가? 계속한다면 목회자인 나도 확신 못하면서 어떻게 성도들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여기서 요한계시록 강해를 그만둔다면 목사의 체면은 짓밟혀도 괜찮지만 신천지가 요한계시록을 인터넷에 도배를 하고 개개인 파고들며 유혹하고 있는데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누가? 보호하고 지킬 수 있겠습니까? 아찔했습니다.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심령으로 몸부림쳤습니다. 가련한 성도들! 보호 능력 없는 목자! 한국에서 최고 보수교단이라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며 말씀 중심이란 총신 출신 목사가 이 지경이면(교만하지만) 그 외 군소 교단 신학교 출신 목회자들과 군소 교단 소속교회 성도들은 신천지에 그대로 노출되어 하루 사이에 몇 십 명씩, 몇 백 명씩(신천지 통계) 미혹당하여 끌려가도 속수무책인 기성 교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일어났습니다.

 

5. 그때 내 머리에 한 줄기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나 성도들이 지금의 목회자들과 성도들보다 더 신학적 지식과 상식이 풍부했을까?” 신약 교회 1세대들은 하늘나라로 거의 다 가고 남은 성도들은 성경책이 없어 한 교회에 두루마리 성경책 한 권이나 또는 해설집 한두 권이라도 있었을까? 내 서재에 진열되어 있는 성경에 관한 책들보다 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때 그들은 이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난 후에 내 생각은 이런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왜, 이 난해한 요한계시록을 계시하셨을까? 어떻게 이해하라고 어떻게 말씀 순종하라고 하나님은 무지한 성도들(지금 나 같은 사람)에게 이해 못할 계시를 주셨는가? 만일 그렇다면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보다.’ 아무도 모르게 암호를 주고 보물섬을 찾아가라는 명령과 같은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한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믿음은 ‘우리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아버지이시다.

 

그 지혜로우신 아버지는 분명히 쉽게, 그것도 아주 쉽게, 그의 자녀들에게 계시하셨을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깨닫는 자/ 해독하는자가 아니고)가 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성경만 읽어도 복 있다고 하셨으니 성경을 먼저 읽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읽기로 했습니다.’ ‘이제 다른 해석 책 없이’ ‘그 시대, 그 성도들의 심정으로 읽어보자.’ 그 시대 성도들에게 가진 책은 몇 권의 성경 두루마리뿐이요, 사도들이 써 준 편지들이요,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환난의 신앙 환경뿐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고 말씀하신대로 성령 하나님의 가르치심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 시대 성도의 심정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자. 어렵게 해석한 주석에서 벗어나서, 기독교 역사2000년 지나오면서 생긴 학설과 학파를 벗어나서 순수한 요한계시록만 이해 될 때까지 읽고 또 읽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시는 겨우 22장 404절 29쪽뿐인데 여기에서 파생된 책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지 그 책들이 준 기초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인 순수한 계시록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만일 신약학 박사학위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연구하신 분이 잘못해석하거나 책을 썼다면 그분에게 사사 받고 그 책을 읽은 신학도와 목회자들 모두 해석이 잘못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요한계시록부터 읽지 않고 설교 듣고 읽었고(어릴 적부터일 수도 있고) 강의 듣고 읽었기에 선입관에서 출발한 요한계시록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선입관이 된 그 강의가 기준이 되어 해석하고 설교했던 것입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 역사는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이 주신 계시, 순수한 요한계시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의 말과 글을 버리고, 현세 기독교계에 논쟁이 되는 말세론도 재림론도 내 마음속, 내 머리에서 버리고 순수한 계시만 읽자. 신학의 조류도 따르지 말고 이단이라고 하더라도 요한계시록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새롭게 발견하자.’ 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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