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파라다이스

  • 입력 2022.05.12 10:0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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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누가 23:43)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우편 강도 데스마이에게 약속한 말이다. 여기서 낙원(Paradise)은 그리스어 파라다이소스(παραδαισος)로 하나님이 조성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기쁨의 동산을 의미하지만, 그들의 죄로 지상에서 상실한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까지 성도들이 들어가 머무는 하늘나라, 곧 천국을 상징하게 되었다. 1980년 5월 어느 따스한 봄날, 신림동 달동네의 허름한 연립주택으로 이사하였다. 안방과 외진 부엌, 화장실 옆에 딸린 쪽방이 전부였다. 1·4후퇴 때 남하하여 재혼한 70대 할아버지와 50대 권사님이 살았다. 그들의 외아들이 입대하여 내가 그 골방을 월세로 얻었다. 그 바로 옆 산자락에 작은 교회가 있었다. 나는 이사한 후에도 정릉동의 교회로 다녔다. 권사님은 날마다 내 방문을 두드려 깨워 주었고, 나는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산비탈 오솔길을 따라 산위로 올라갔다. 산등성이에 산마을 사람들이 부치는 올막졸막한 밭이 줄지어 있었다. 산꼭대기에는 제각기 운동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서편의 넓은 길로 다녔고 나는 동편의 좁은 길로 다녔다. 그 산중턱에 작은 너럭바위가 있었다. 하산하며 거기 앉아 여명을 맞았다. 기온은 쌀쌀해도 기운은 쌩쌩하였다. 그날 새벽, 희끄무레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빛이 짙게 깔린 하늘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산마루와 맞닿은 지평선 너머의 먼 하늘이 날카롭게 찢어지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번개 치듯 지그재그로 찍찍 갈라졌다. 어두침침한 하늘 속에서 새파란 속 하늘이 나타났다. 티 하나 없이 맑고 싱그러웠다. 신령한 기운에 휩싸여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어느새 나는 그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 두둥실 떠다녔다.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1:24) 그때 그 새 하늘이 다시 쪼개지기 시작하였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강한 껍질이 벗겨지듯 정말 힘들게 파열되었다. 여기저기 갈라진 틈새로 날카로운 불꽃이 튀겼으며, 그 불기둥이 레이저 광선처럼 솟구쳐 올랐고, 태초의 빅뱅처럼 큰 폭발음을 내면서 섬광이 번쩍번쩍 발하였다.

어디선가 밀려온 엄청난 양력에 의해 하늘 울타리와 테두리가 모두 파괴되는 듯하였다. 순간 그 하늘 속에서 더욱 새야한 3번째 하늘이 나타났다. 세상에서 가히 볼 수도 없고, 아무도 드러낼 수 없는 공간에 신령한 기운이 감돌았다. 수정바다와 유리거울을 보는 듯하였다. 그 하늘을 보다가 2번째 하늘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고, 2번째 하늘에 비해 현세의 하늘을 떠올리니 생지옥 같았다. 흑암의 세계처럼 느껴져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주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날에 달이 해처럼 밝을 것이며, 햇빛은 7배나 더 밝아 7일간의 광량에 맞먹는 빛을 낼 것이다.’(이 사야 30:26) 그리고 그 3번째 하늘 속에서, 새하얗고 예리한 초음속 광선이 번쩍 비치는가 싶더니, 아! 내 눈썹과 눈썹 사이, 양미간 이마에 극초음속 속도로 들어와 쾅 박혔다.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며 파르르 떨었다. 벼락을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초고압에 감전된 것 같기도 하였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나는 산 아래 교회 앞에서 어떤 사람의 무등을 타고 있었다. 그저 텅 빈 공허 속에서, 평소와 같이 회색빛 동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상이 너무 혼탁하여 숨통이 꽉 막히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서서히 현실을 인정하고 돌아왔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요한계시록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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