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수 칼럼] 17. “그러므로”의 삶을 살자!

  • 입력 2022.06.23 17:16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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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수 목사 (일산주님의교회)

2009년은 로마서로부터 시작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로마서 11장까지는 복음에 대하여, 12장부터는 “이렇게 살라”의 말씀입니다. 율법에서 자유, 죄에서 자유, 죽음에서의 자유, 축복을 받으면서 사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배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 고 그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모든 인생은 실패입니다. 예배의 승리가 없는 삶은 헛 것, 헛 스윙, 헛방입니다. 임종, 죽음앞에, 한결같이 불안하고 초조한 이유, 영혼이 그렇게도 당황하는 이유,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만남입니다. 예배가 목적이 아니었던 사람의 최후 고백은 허무입니다. 초라함입니다. 죽음 앞에 예배의 삶을 산다면 죽음의 장송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할렐루야” 찬송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배입니다. 모든 삶의 중심이 예배입니다. 예배가 살면 우리가 살고 예배가 죽으면 우리가 죽습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예배, 임재가 있고, 향기 나는 예배, 생명이 있고, 감사가 있고, 눈물이 있고 축제가 있는 예배, 생수가 솟아나고 은혜의 강이 흐르는 예배, 예배의 기름부음은 패배감은 사라지고, 좌절감, 열등감, 죄책감에서 자유를얻습니다. 죽음의 세력들이 떠나갑니다. 예배? 어떻게 하면 잘 드릴 수 있는가? “몸으로입니다, 심판자의 모습으로가 아닌 몸으로 드리는 예배자입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 걸어 다니는 예배자, 걸어 다니는 성전, 그것이 예배입니다.”

우리 몸은 성전입니다. 성전은 성전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몸을 주께 드리기를 거부하면 실패합니다. 우리 몸이 얼마나, 기막힌 원리로 움직이는지요. 우리 눈은 한번 깜박이는데 40분의 1초가 걸립니다. 콧구멍은 서너 시간마다 활동을 교대로 하는데 한쪽은 냄새 맡고, 다른 한쪽은 휴식합니다. 성인의 뼈는 206개인데 그중에 절반 이 손과 발에 있습니다. 피부는 천년만년 방수 가죽이 요, 그 허물이 끊임없이 벗겨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새피부가 공급되어 완전히 새것으로 바뀝니다. 몸속의 혈관의 총길이 11만 2천키로미터로서 지구를 두 번 감을 수 있는 길이입니다. 차 한 대 만드는데 1만3천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보잉 747기는 300만개의 부품이 필요하 고, 우주왕복선은 500만개의 부품이 필요한데 사람의 몸 에는 10조개의 세포가 있습니다.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세포가 우리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25조개 의 적혈구가 있고, 250억 개의 백혈구가 있으며 혀에만 9 천개의 미각 세포가 존재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이 최고로 정교한 기계를 만든 다고 해도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솜씨” 에는 비길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몸의 주인이 없겠습니까? 이 주인 앞에 드리는 영적예배, 마땅하고 합당한 예배(reasonable worship) 산 제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산 제사뿐 아니라, 삶의 제사도 멋있게 드려야합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고운 가루 내어 주님께 드리는 것처럼, 내 몸 드려, 내 맘 드려, 내 삶 드려, 내 물질 드려, 내 생각 드려, 날마다의 삶 앞에 “그러므로의 삶”을 살고,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이유와 변명도 없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찌든 삶에 익숙한 것을 깨고 승리하라, 그리고 예배하라, 그리고 찬양하라, 그리고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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