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환 칼럼] 다시 선교원을 시작하다

  • 입력 2022.07.21 17:3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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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jpg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건물은 4층으로 증축 공사를 하고 있는데 아내는 공사 중인 주차장 한편에 책상을 하나 두고 선교원 원아 모집을 했다. 일단 근처의 작은 점포에서 선교원을 하다가 이사를 와야지, 건물이 준공된 그때 시작하기에는 학기가 지나서 모집이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건물도 없이 원아를 모집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지역사회에 우리 교회가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구나.’ 감사하였다. 지금은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우리 가 처음으로 점심을 먹이고 두 시에 귀가하는 프로그램을 냈다. 아이들을 선교원에 보내고도 자모들이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조건이 마음에 맞아서 금방 아이들 40명이 모였다. 근처 상가 점포에서 임시 선교원을 운영 하기 시작했다. 건물이 완공돼서 3층으로 선교원이 들어올 때 모든 시설, 집기, 교구들을 외상으로 들여와 시작했지만, 원아들이 대기로 줄을 설만큼 잘 돼서 빚을 다 갚았다. 오후 시간도 종일반과 예능 지도로 초등학생들까지 와서 지역사회에서 가장 큰 교육기관이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여자가 교회로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러보았다는 구청 어린이집 담당 직원이었다. ‘늘 여기를 지나면서 보니 선교원이 매우 큰 것 같은데 왜 선교원을 하느냐. 어린이집으로 전향하면 정부에서 저리로 융자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선교원들이 시의 관리에서 벗어나 있어서 모두 어린이집으로 전향하라고 하는 시책이라며 적극 권장을 하는 것이다. 지금 대출 빚이 이자가 높아 힘든데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바꿔준다니 얼마나 솔깃한 이야기인가.

우리에겐 복음과 같은 소식이었다. 대신 아이들이 많으니 평수 제한이 있어 두 개 층 140평을 어린이집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려면 3, 4층에 어린이집을 하고 교회 가 2층을 사용해야 하는데 2층에 입주해있는 학원들이 이주해 주어야 했다. 금방이라도 건물이 부도가 나서 한 푼도 못 받을 상황이었던 것을 사람들은 기억도 못 하는 듯 그들은 권리금을 요구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우리 가 융자를 얻기 위해서 자신들이 꼭 나가주어야 한다는 상황을 이용하여 큰 권리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었지만,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결국 2층을 예배당으로, 지하는 식당 겸 교육관으로 3, 4층은 어린이집으로 단장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이렇게 억지로라도 몰아 가서 점점 넓혀가게 하셨다. 확장한 만큼 또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나날이 늘어났다. 성경 암송 카드로 성경을 외우게 하고, 연말이 되어 재롱잔치를 할 때는 찬양 축제로 공연을하여 부모님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고, 아이들도 아마 평생 그 찬양과 말씀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마무리 곡은 “우리는 모두 다 주님의 증인 땅끝까지 이르러 주 복음 전하리….”이었다. 지금은 다들 자랐으니 어디에선가 주님의 증인들이 되어 있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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