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국 칼럼] 할머니(halmoni)

  • 입력 2022.09.29 11:2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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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한 주에 한 번 만나, 설교 나눔과 함께 식사와 간단한 운동도 하는 모임이 있다. 최근에 한 목사님이 새로 들어오셨다. 영 국으로 유학을 떠나 구약으로 박사학위도 취득하신 분이다. 어느 날 ‘카톡’ 대문 사진을 보는데 좀 특이한 사진이 있어 물어보았다. 두 딸과 함께 어린아이는 누구인가요? 대답이 마음을 울컥하게 감동을 주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미혼모의 아들을 위탁받아 집에서 가족 처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10개월 즈음에 집에 들어왔는데 이제 2년 정도 흘렀다는 것이다. 아이는 누가 보더라도 외모가 외국인이다. 아버지가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생모와 한, 두 달에 한 번씩 아이와 함께 만나게 해주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 위탁 아동을 키우는 데 중요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그 목사님이 참 존경스러웠다. 물론 사모님과 두 딸의 이해와 동의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가족이 존경스럽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지인 선교사님 중에 한 분은 두 여자아이를 입양해 키운 지가 십수년이 되었다. 어느 해 어느 날 교회에서 입양한 두 어린 딸을 데리고 특송을 선교사님 내외가 부르는데, 한참 동안 감동되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그러기에 자기를 가장 위하고 사랑하고 집착한다. 그리고는 가족이다. 자식이다. 그런 데 피하나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을 입양한다. 위탁해서 키운다. 자신의 자식처럼,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존경스럽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 지난 2000년 칼럼을 문서파일을 하던 중 ‘홀트’여사에 대한 단상을 쓴 글이 있어 적어 본다. 제목이 “할머니(halmoni)”이다. “할머니”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새 부모를 만난 한국 고아들이 서투른 한국말로 부르는 “버서 홀트”여사를 부르는 별명이다. 그 할머니가 우리 곁에 96세를 같이 하다가 영원히 떠났다. 전 세계에 입양된 한국의 고아는 8만 8000 여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거의 전부가 홀트여사의 사랑의 손길을 통해 세계 곳곳의 건강한 가정에서 잘 성장하고 자라고 있다. 홀트여사는 늘 “모든 어린이는 사랑을 받으면 아름다워진다” “모든 어린이는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말을 종종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40년을 한결같이 고아 입양사업으로 평생을 바쳤다. 그녀의 고아입양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내용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미국에서 유복하게 살던 홀트 여사 부부는 1955년 전쟁고 아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우리부터 이 아이들의 부모가 돼 주자”며 낯선 한국 고아 8명을 입양했다.

그런데 당시는 한 가정에 두 명까지만 입양을 허용했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홀트여사 부부의 입양를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세계 10개국에 한국 고아 7만 명을 입양시켰고, 국내에서도 1만 7500명에게 새 가정을 찾아줬다. 홀트 여사는 전 재산을 한국의 고아와 장애인을 위해 썼고, 전 세계 입양아들이 보내준 선물과 낡은 조각 이불로 검소하게 살았다. 홀트 여사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수 많은 고아들이 지금은 당당히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자기의 몫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피부 색깔도 다른 이방인, 그것도 한 여인의 힘이 이토록 위대하고 강할 수가 있을까? 홀트여사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인식의 수준이 형편없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홀트 여사가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입양에 대해 좋게 인식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은 고아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하다. 한국도 입양이 활성화돼 많은 어린이가 한국 가정에서 자라는 날이 와야 한다”는 말을 자주 되풀이 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은 친자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다. 사실은 성경적으로 본다면 자식도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지 내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왜 그렇게 집착이 강한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딸이 없어 한편 딸을 키우는 집의 재미를 모르고 지낸다.

그럴 때면 이 나이에 딸을 낳기도 그렇고, 솔직히는 아들이 될지 딸이 될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아내는 우리도 예쁜 딸을 데려다가 키우자고 입버릇처럼 한다. 그때마다 나는 목사 형편이 세 자녀 키울 수 있겠는가? 하면서 대답한다. 경제적 여건만 되면 예쁜 딸 하나 입양해 키우고 싶은 속 심정이다.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그런 사랑스런 마음이 든다. 꼭 내 손으로 낳아야만 되는가? 낳은 정 못지않게 기른 정이 있다. 이제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라는 어린이들이 건강한 가정에 서 잘 자랄 수 있을까? 염려해야 한다. 그래야 홀트 여사의 희생이 값진 것이다.“(2000.8.6.) 20년 전 글을 보니, 여러 가지 잔상이 든다. 그랬으면 ‘좋았을 껄’ 하는 회한이 든다. 어느덧 인생의 석양이 되어가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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