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환 칼럼] 공항 가는 길

  • 입력 2022.11.10 16:2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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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공항 가는 길은 왠지 설렌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동남아가 아닌 곳은 대부분 열 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행기로 열 시간 이상 이동하는 것이 정말 온몸이 뒤틀리는 고충인데도 이상하게 공항 가는 길은 한결같이 설렌다.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 편하다….’ 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비행기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지하실 방에 온 가족이 살 때였다. 싼 집을 찾고 찾아서 아마도 그 동네로 이사를 한 것이었을 것이다. 한쪽에는 주인집 연탄이 쌓여있고 주인집 보일러도 있는 그 지하실 한편에 방이 한 칸 있었다. 상수도도 하수도도 없어서 물을 길어 와서 밥을 하고 설거지도 마당의 수도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에 줄을 서야 했다. 그게 정말 죽을 맛이었다. 다 같이 바쁜 아침 시간마다 일어나는 화장실 전쟁, 가난은 정말 괴로운 것이다. 환경이 그러하니 늘 약간의 연탄가스 속에 살고 있었지만, 눈이 내려서 날씨가 유독 기압이 낮은 그런 날이었나보다. 우리 가족은 단체로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비몽사몽간이었지만 찬바람 속에 누워있으니 조금 정신이 드는 듯했다.

겨우 샛눈을 떠보니 우리 가족은 마당에 일렬로 누워 있었다. 마치 무장 공비를 사살하여 시체를 늘어놓은 것처럼 비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주인이 연탄불을 갈려고 내려왔다가, 연탄가스가 꽉 차 있어 우리 방을 열어보고 쓰러진 우리 가족을 발견했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와서 식구들을 다 끌어내어 눈 내린 차가운 마당에 눕혀놓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계속 기절한 척 눈을 뜨지 않았다. 정말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창피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말소리들이 들렸다. “아들을 먼저 살려야지 대가 끊어지면 안 되니.” 하며 내게 맨 먼저 동치미 국물을 먹였다. 식구들이 다 깨어나지 못하니 사람들이 걱정했다. 한참 지나고 주위가 조용해진 듯해 실눈을 떠보았다. 우리가 살던 곳이 김포공항 근처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길이었기에 저 멀리 비행기가 가는 게 보였다. ‘비행기다.’ 내게서는 너무 멀리 있는 비행기, 그 거리보다 더 멀리 있는 나의 환경. 그러나 희망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기도는 또 얼마나 좋은 것인가. 희망은 무엇이나 꿈꿀 수 있고 기도는 무엇이나 구할 수 있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너무 비참해요. 너무 창피해요. 제가 지금은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여기 누워있지만, 이다음에 저런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마음껏 다니게 해주세요. 하나님, 세계 어디든 다녀서 비행기를 가장 많이 타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그 기도를 잊지 않았다. 하나님도 내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나는 지금 세계 어디든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집회를 하고 선교를 한다. 정말 비행기 타는 게 너무 힘들어 피하고 싶어 꾀를 부리고 싶을 만큼 비행기로 이동할 일이 많다. 좀 쉬고 싶을 때, 꾀가 날 때, 문득 그날의 기도가 떠오르면서 ‘주님 죄송해요. 이렇게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데 제가 지금은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네요.’ 다시 마음을 다지며 공항 가는 길에 나선다. 기다란 인천 대교를 지나면 다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가는 곳에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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