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회는 바벨탑만 쌓고 있었다

  • 입력 2022.11.10 17:1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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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勝者獨食)의 사회, 참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우리 사회를 이르는 말 이다. 패자(敗者)에 대한, 2등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회. 극소수의 선택받은 젊은이들 말고는 이 나라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기를 펴고 살아갈 수 없는 지금의 사회구조가 이번 이태원 참사에 이르게 된 원인이 아닌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숨 막힐 듯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일까? 젊은이들을 그 숨 막히는 우리에서 풀어놓아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충분했던 시간들이었다고 본다. 뒤늦게 ‘누가 잘못 했냐?’, ‘아무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등등의 말은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든 면해보겠다고 하는 사회 지도층의 비열 함에 불과하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고, 남을 배려하는 사회라면 모두가 나서서 ‘내가 잘못했다. 내가 죄인이다.’ 하는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자세일 것 같다. 믿음, 그 믿음의 자세이다.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라면 바른 정신문화 를 가르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하면 매 맞을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우리 사회는 지금 올바른 정신문화 가 사라지고 없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오래전에 분별력을 잃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중(重)하고 덜 중한지 분별없이 육신의 쾌락과 기쁨을 좇 아가는 ‘무리’에 불과하다.

믿는 자들의 믿음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믿음이 바로 서 있으면 적어도 육의 생각만을 좇아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언제부터 핼러윈 축제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왜 그것이 필요한가를 먼저 파악해볼 수 있도록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르쳤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소망이 없어졌으나 교회는 살아서 소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마저 젊은이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젊은이들이, 후진들이 자라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믿음’ 교육을 통해서 바 른 정신문화를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런 데도 교회의 중직을 맡은 자들마저도 ‘얘가 정신이 있나 없나? 지금이 어느 땐데 공부해야 할 시간에 교회를 가다니?’ 하고 야단치고 윽박지르는 분위기에서 교회 교육이 살아날 리가 없다. 흔히들 믿는 이들의 가정에서조차 ‘교회는 때가 되면 갈 수가 있는 거야, 지금은 대학 입학이 더 중요해’라고 가르친다면 이는 순서를 한참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時>라는 것, 교회 다닐 때가 언제인가? 자녀들이 세상 가치관에 물들어서 분별없이 날뛸 때, 세상 마귀 사탄의 궤계가 이미 우리 자녀들의 정신세계를 다 점령하고 난 다음에는 때가 이미 늦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런 대형 사고가 난 다음에 가서야 ‘정부는 뭐하고 있었느냐?’ ‘대통령 물러나라.’ ‘장관이 책임져라.’ 하며 목청 높이고 TV 화면에 나와 핏대 세우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나’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누구의 문제일 것 같은가? 교회가 문제이다. 교회는 누구를 위해 있어야 하는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을 위해 교회 가 존재해서는 아니 된다. 세상을 위해 서,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진리를 가르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흔히들 교회가 뭐 좀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 콧방귀도 안 뀌는데 무얼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흔히 하는 말로 ‘지들이나 잘하지…’. 교회가 그만큼 신뢰를 잃었다는 얘기다. 교회는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세상은 돌아보지 않고 바벨탑만 쌓아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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