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미향 칼럼] 소싯적의 크리스마스

  • 입력 2022.12.29 10:37
  • 수정 2023.03.06 16:09
  • 기자명 문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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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미향 사모(주님기쁨의교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밤새 눈이 내려온 동네, 온 세상이 다 하얗게 설국으로 변해있었다. 어린 소견에도 세상이 밝고 환하고 갑자기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신비하고 멋진 겨울 아침을 선물로 받은 듯했다. 큰 눈송이로 찰진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펑펑 내리는 날은 포근했다. 예나 지금이나 겨울에는 눈이 와야 맛이고 멋이다. 털모자와 오버 코트 어깨 위에도 하염없이 눈이 쌓이고 이걸 계속 흔들어 털어가며 등하교를 할 때면 행복했다. 쉬는 시간엔 모두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눈을 뭉쳐 눈싸움을 했다. 설원을 닮은 넓은 운동장은 우리들의 겨울 왕국이었다. 앞이 안보이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이 되어 집에 가면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가 수건으로 탈탈 털어 주는 것도 재미였다. 어릴 때 집 근처의 작은 교회를 다녔기에 성탄 축하의 밤에는 늘 춤(율동)을 추고 성극에 참여했다. 성탄 이브 날 오전 총연습 리허설까지, 한 달 넘게 매일 교회에 모여 연습을 했고 집으로 갈 때는 뜨거운 호빵과 귤 한 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자다가 멀리서 찬송 소리가 그야말로 고요한 정적을 깨고 거룩하고 아름답게 들려오면 눈이 번쩍 떠졌다. 왔다! 우리 집 앞에 점점 가까이 들리던 잡담이 잦아들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들리면 우리 가족 모두 불을 켜고 일어났다. 우리 부모님은 그 당시 교회를 방학하고 세상에 속해 있었지만 우리 집에 천사가 온 듯, 반갑고 고맙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뻐하셨다.

그러나 옷을 입고 달려 나가는 사람은 큰 딸인 나였다. 대표로 나가 수줍게 웃으면 꼭 말하지 않아도 다 통하는 뭐가 있었다. 목사님 아들이었던 젊은 선생님이 내게 오히려 과자를 한 아름 안겨 주셨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성탄을 준비하고 발표회 끝난 후 대학청년부는 교회의 난로 주변으로 둘러 앉거나 친구(집사님댁) 집에 우르르 몰려가곤 했다. 성탄절은 부모님이 암묵적 허락한 ‘외박의 날’이었으니 더 해피했다. 방안에 이불을 펴고 그 속에 발을 넣고 둥글게 모여 앉아 밤새 시끌벅적 올 라잇(All Night)을 했다. 돌아보니 그때 집사님 부부는 밤새 노는 우리의 젊음을 흐뭇해하셨을 것 같다. 밤새 수다를 떨며 깔깔대고 힘 좋게 놀다가 시간 맞춰 새벽송을 돌았다. 살짝 피곤한 몸으로 오전에 주일학교 예배와 장년 성탄 예배의 성가대를 섰는데 날밤을 새고 졸음을 참고 드리는 매년 성탄 풍경은 어쩐지 안 좋은 것 같아 자책하곤 했다. 겨울은 춥지만 오히려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발이 푹푹 빠지게 눈이 아주 많이 오기를 소원하고 지금도 새하얀 눈밭에 굴러보고도 싶지만 사실은 다 마음뿐이다. 도시에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려도 안될 것 같고 빙판도 위험하니 그저 따뜻하게 겨울을 나면 족하겠다.

 

 

 

옛날에는 성탄 트리의 앙증맞은 전구들이 반짝이고 성탄 카드를 쓰고 캐럴이 흐르는 거리에 인파로 북적이면 절로 흥이 났건만, 이젠 눈도 별로 안 오고 카드도 안 쓰고 캐럴도 안 들린다. 저작권료나 생활 소음 때문이라나? 앙꼬 없는 찐빵이다. 군밤 장수도 안 보이고 군고구마 파는 곳도 없고 거리의 철판구이, 붕어빵도 보기 드물다. 그 뜨거운 맛이 꿀맛이고 제맛인데. 이제는 처마 밑의 고드름도 볼 수 없고 모든 게 눈 녹듯이 다 사라진 것 같다. 마음은 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꾼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로 내 누추함과 상처와 죄악을 다 덮고 그저 흰 눈처럼 맑고 깨끗한 순전한 마음을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탄의 계절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위를 돌아보고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연말연시가 되면 좋겠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임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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