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칼럼] “작은 거인 앞에 큰 절을 드렸습니다.”

  • 입력 2023.01.15 07:3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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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정전 70주년입니다. 연초부터 한국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함양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오전에는 저희 교회가 진행한 제16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주 내용으로 소개되는 ‘워싱턴에 새겨진 한국전쟁의 별’ 다큐 시사회를 하였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KBS와 SBS방송을 통해서 여러 번 방영이 되었고 재방, 삼방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사에는 유튜브에 올려주지 않고 우리도 저작권에 걸려서 유튜브에는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저작권을 갖는 유튜브 영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우리 교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기자들이 가슴이 울컥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중앙보훈병원에 있는 참전용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을 하였습니다. 보훈병원을 갔는데 너무 미안한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보훈병원은 여러 군데를 찾아다녔지만 정작 한국에 있는 보훈병원은 처음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서 들은 바에 의하면, 저만 처음 간 것이 아니라 교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보훈병원 관계자분들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보통 수요예배에는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20~30명밖에 안 모였지만 제가 간다고 하니까 병원 측에서 협조를 해 주셔서 보훈가족들이 많이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위문품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병원 측에서 위문품 전달식까지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한 전광판에 “소강석 목사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글까지 올려 주셨습니다. 참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막상 국가유공자나 가족들 앞에서 설교를 하려니까 너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송구한 마음이 그지없었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을 했는데 그 순간을 버티질 못해서 기관지에 가래가 걸려서 기침을 하고, 또 보호자가 가래를 뱉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10분, 15분 내외로 짧게 설교를 끝내려고 했는데 위문품 전달식 행사 시간 때문에 설교를 좀 길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저의 간증도 하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저는 98세 되시는 김석규 선생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분은 6.25 참전용사이신데 지금은 워낙 고령이셔서 휠체어에 의해서만 움직이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한국전쟁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고 그 모든 역사가 그 어르신의 얼굴에 다 새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체구도 아주 작으시고 키도 작으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제 앞에는 작은 거인으로, 아니 작지만 위대한 거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맨바닥에 엎드려서 큰 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같이 맞절을 하는 것입니다. 봤더니 그분의 아드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아드님도 교회 장로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께서 아버지에게 절만 해주지 마시고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왼손으로는 그분을 보듬고 오른손으로는 퉁퉁 부은 다리가 가라앉고 떨리는 다리는 진정되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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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기도를 해드리고 나오는데 갑자기 17년 전에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2007년 1월 15일에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전야제에 참석하였는데, 한 흑인 노병이 와서 왼쪽 허리에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누가 초청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전쟁 후에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저도 모르게 그 분께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며 “제가 꼭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는 많아야 예닐곱 명 데리고 오실 줄 알았는데 50명 가까이 데리고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시작되었고 16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해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흑인 노병에게 큰절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매년 6월이 되면 외국에서 초청한 참전용사들과 함께 현충원을 방문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 심지어는 자유로운 목회 활동까지 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참전용사 어르신들이 고령이 되셔서 갈수록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 분이라도 더 우리 교회에서 초청하고, 또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만나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보은을 행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가늠한다고 한다면, 보훈의 정신이 가득하고 그 가치를 함양 하는 것은 한 국가와 국민의 품격을 가늠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지난 16년 동안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함양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17년째인데 이 땅에 참전용사 어르신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까지 그분들을 찾아뵙고 초청하여 보훈의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 또한 품격 있고 격조 있는 애국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땅에 참전용사들이 하나님께서 건강 주셔서 오래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보훈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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