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환 칼럼] 어머니의 바나나 우유

  • 입력 2023.01.26 10:5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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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jpg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모태신앙이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한 날부터 나는 매일 어머니와 함께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교회에 일등으로 가시고 맨 앞자리에 앉으시는 분이다. 지금도 교회에서 한 시간여 거리에 사시지만, 어머니는 항상 거의 맨 먼저 교회에 도착하신다. 그때도 새벽기도 시간에 어머니와 나는 늘 1등으로 갔고, 어머니는 교회에 도착하면 맨 먼저 가방을 열고 비닐봉지에 싸둔 무언가를 소중히 두 손으로 감싸 강단에 올려놓고서야 기도를 시작하셨다. 매일 새벽 같은 행동을 하시는데 헌금은 아닌 것 같은데 무엇일까? 퍽 궁금하였지만 물어보지 못하고 그런대로 시간이 지났다. 그날은 마침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급히 갈 곳이 있어 주기도문 후 개인 기도를 하지 않고 바로 일어서다가, 맨 앞에 앉아있던 나는 우연히 강단 뒤의 담임목사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목사님은 B 회사의 가운데 부분이 불룩한 바나나 우유를 빨대에 꽂아 맛있게 드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어머니께서 새벽마다 소중히 강단에 올려놓으신 것은 바나나 우유와 빨대였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저렸다.

 

그렇게나 사람들을 대접하기 좋아하고 특별히 주의 종들을 섬기기를 좋아하시던 외할머니, 그 모습을 보고 자라 꼭 닮은 우리 어머니신데. 무엇을 하던 항상 많이 하여 이웃과 나누시고 집에 온 사람은 누구든지 그저 보내는 일 없이 극진히 대접하는 걸 즐거움으로 알며 살아가시지만, 하나님께서 경제를 꽉 묶어 놓으셨던 그 시절에는 마음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현실이 안타까워 어머니 나름대로 생각해 낸 정말 어머니의 형편에서 최선의 대접이었음을 담임목사님은 아셨으리라. 하나뿐인 이 아들이 그 우유를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알아도 두 개를 살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제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걱정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적당히 절제하시지만 10년 전만 해도 어머니는 대 심방 때마다 큰상 두 개를 붙여도 음식을 놓을 자리가 없도록 가지가지 음식을 차려 심방을 받으시고 다 먹지 못하는 것들은 싸주시고 이웃에 나눠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마도 심방 대원중에는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무엇 하러 이렇게 차리시나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대접하고 싶던 어머니의 안타까웠던 세월을 알기에 아무도 모르게 목이 메어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괜히 어머니에게 툴툴거린다. “뭐 하러 이렇게 많이 차리세요? 누가 다 먹는다고.” 지금은 부흥강사가 되어 곳곳에서 가장 좋다는 음식들을 항상 대접받는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그 지독히도 가난하던 시절, 어렵다고 한탄하고 있지 아니하고 새벽마다 정성껏 목사님을 대접한 어머니의 바나나 우유의 열매란 것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할 일이 있다. 기도하면 형편에 맞는 것을 할 수 있는 지혜도 하나님은 주신다.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내 형편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여 자녀에게 열매를 거두게 하신다. 가끔 아내는 내가 좋아한다고 B 회사의 바나나 우유를 사둘 때가 있다. 빨대를 탁 꽂아서 그것을 먹으며 생각하기는, 아마도 그 새벽 모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잡수시던 우유는 같은 것이라도 이 맛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우유에는 지극한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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