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사람들

  • 입력 2015.04.16 10:0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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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로필]
▣ 순복음 신학교 교수
▣ 일산기독교연합회 회장
▣ 사랑이 있는 마을 담임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우리는 개미를 열심히 일하는 곤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미에 번호표를 붙여 촬영해 보면100마리 중에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15마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머지 85마리는 일도 하지 않고 허둥대거나 일하는 개미의 뒤를 그냥 따라다니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 15마리의 개미 중에서 실제 핵심적인 일을 하는 개미는 2마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100마리 중 15마리가, 또 15마리 중 2마리가 일하는 것입니다. 조직 사회에 비유한다면 20%의 근로자가 80%의 일을 한다는 파레토의 법칙과 일치하는 셈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들을 가리켜 ‘창조적 소수’(The Creative Minority)라고 불렀습니다. 전쟁과 죄악으로 얼룩진 인류 역사가 그나마 이들 창조적소수로 인해서 아직까지 희망과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는 토인비의 믿음에 깊이 동의합니다. 세속의 역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 속의 역사나 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엘리야, 예레미야와 아모스 같은 예언자들이 그러했고, 세례요한과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적소수를 대표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한 분의 죽음과 부활로 온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소수였지만 초대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기독교 확산에지대한 공을 세웠고, 박해받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침내 로마를 복음화 했습니다. 기독교가 교권주의의 제물이 되자 소수의 종교 개혁자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일어나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민족 대표 33인이 선정될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인은 전국적으로1.3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대표들 중 절반에 가까운 16명이나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은 기독교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바닷물의 염분 농도는 평균 2.8%로 알려져 있습니다. 3%도 채 안 되는 적은 양의 소금기가 온 바다를 정화하면서 무수한 해양생물들을 살아 숨 쉬게합니다. 3%의 소금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3%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3%의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살고 있기에 우리 사회가 그나마 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3%의 소금이 바닷물을 정화시키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소수의 성도들만 있어도 교회를 교회답게 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교세는 25%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언론이 교회의 부패를 지적하며 바로잡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교회에는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가 3%도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서 사람들에게 밟힐 뿐 이니라”(마 5:1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실감이 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2015년 1월 28일, 한국갤럽에서 1984년부터2014년까지 30년간 한국인들의 종교와 종교 의식변화를 비교한 ‘한국인의 종교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14년 현재 한국인 종교 분포는 불교22%, 개신교 21%, 천주교 7%로 불교 신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3대 종교 중 비신자가 가장 선호하는 종교는 불교였고, 가장 선호하지 않는 종교는 개신교였습니다. 2004년 조사에서는 불교 37%, 천주교17%, 개신교 12%였고, 2014년에는 불교 25%, 천주교 18%, 개신교 10%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물량주의, 성장주의,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소금의 짠 맛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며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고 한국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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