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여호수아 같은 심정으로

  • 입력 2015.08.27 10:28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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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신학의 정수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제5대 총장에 여성 최초로 이정숙 박사가 취임했다. 김상복 목사, 케네스 마이어 박사, 하용조 목사 등 영적 거장들에 이어 총장으로서의 직임을 맡게 된 이정숙 총장을 만났다. 이 총장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선교사의 비전을 받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를 마치고 도미하여, 드류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프린스톤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연구재단 연구기금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기독교미술사로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2002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부임하여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교학처장을, 2012년부터 학사부총장으로 섬긴 행정 전문가이자 학자이다.<편집자주>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제5대 총장에 취임하심을 축하드립니다. 학교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인데다 오랫동안 행정 전문가로 일해오신 경력 때문에 안팎으로 기대가 높습니다. 소감을 밝혀 주신다면?
신학대학원 총장이라는 자리가 혹자는 명예직이라 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 나이에 명예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일을 하기 위한 자리로 받아들입니다. 2005년부터 교학처장과 학사부총장으로 일해 와서 학교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전국신학대학협의회와 아시아신학교육협의회 등에서 활동했기에 총장의 직임이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사실 정말 고사하고 싶었습니다.
김상복 목사님이 시작하셨고, 케네스 마이어 박사님, 하용조 목사님 등 영적 거장들이 하셨던 일을 제가 맡는다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됐죠. 마치 여호수아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총장에 추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침 신명기 말씀을 읽고 있었는데 여호수아와 제 모습이 연결됐어요. 하나님이 왜 여호수아에게 성경 곳곳에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절절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할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던 거죠.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이 저에게도 말씀하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행정 일을 하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계들을 맺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배우고 지혜도 얻었죠. 어쩌면 하나님이 총장이라는 직분을 통해 제가 얻게 된 자산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부르심이 아닐까 생각해서 굉장히 힘들게 순종하게 됐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 대해 바야흐로 호의적으로 변화된 것이 사실이고, 각 분야에서 여성들이 좋은 역할을 하고 일한 만큼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됐어요. 여성이기에 잘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부족한 면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남녀를 만든 이유가 함께 협력하라는 것이니 교수님들과 동문들, 학생들이 모두 함께 상생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감히 바랍니다.
신학교육의 중요성은 재차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활동과 함께 교수활동을 해오셨는데 횃불트리니티의 신학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학교육이 시작됐던 서구와 유럽에서는 신학생 수요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 교육을 통해 의외의 수요가 생기기도 하죠. 서구에서의 감소는 상대적으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든 것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글로벌 사우스는 사실 신학교육의 수요가 높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한국과 중국, 필리핀, 싱가폴 등 아시아 교회가 급성장하고 있고 다들 선교에 열심이죠. 그와 동시에 신학교육의 세계적 수요가 굉장히 확장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학교육의 질을 얼마나 잘 보장하는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서구는 학문의 전통과 방법론이 신학에 잘 적용돼서 저력이 있어요. 서구 신학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구 신학자들의 글을 보지 않을 수 없고, 좋은 연구들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글로벌 사우스의 신학교육은 매우 활발하지만 우리는 그 방법론에 주목해야 합니다. 서구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현지에 맞는 신학교육을 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서는 뚜렷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저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는 국제화에 주목해서 선교인력 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강의를 영어로만 진행했어요. 하용조 목사님이 총장으로 오시면서 ‘한국교회와 상관이 없으면 협력이 일어날 수 없다’고 하셔서 한국어과정을 시작하게 됐죠.
그러고 보니 한국어과정에서 의외의 새로운 힘이 나오더군요. 영어과정 학생들도 여기에 더 자극을 받고. 한국어 학생들은 영어에 대한 울렁증을 극복하는 것에 적극적이게 됐고, 영어과정 학생들은 일종의 우월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어요. 영어를 잘한다고 훌륭한 영성을 갖는 것도 인격을 지닌 것도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거죠.
국제화 면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아시아 상황에 맞는 커리큘럼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아직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아직 해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방향은 분명할 거라 여겨집니다. 국제화 속에 한국적 커리큘럼은 어떻게 풀어나가실 생각이신지?
서구 중심적인, 교회가 더 많은 자원을 갖고 있는, 서구 사람들의 사고 체계에 맞는 커리큘럼이 아닌 좀 더 토착화된 커리큘럼을 가져보자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교수들이 먼저 분명한 지향점을 가져야 하죠.
학기 시작하기 전에 전체 교수들이 모여서 하루 전체를 할애하여 회의를 가졌습니다. 우리 학교는 어떻게 세워졌고, 그 목표를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 나름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정체성에 따른 일종의 전략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계속 추진해도 되는지 아니면 바꿔야 하는지 의견을 나눈 거죠.
종전에는 커리큘럼이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들을 기반으로 해서 커리큘럼 개정위원회를 만들어볼까 생각중입니다. 현재 우리의 커리큘럼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보고, 꼭 영어과정과 한국어과정을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가야 하는지… 동문들의 의견도 반영할 예정입니다.
설립 당시부터 세계선교를 위한 국제화대학을 표방하셨는데, 국내 다른 신학교와의 차별성이 있다면?
김상복 목사님이 초대총장에 임명되어 취임하시기 전에 이미 커리큘럼 조정이 이뤄진 걸로 압니다. 특히 목회와 사역 면에서 실천신학을 중요시하셨죠. 때문에 설교도 강해설교, 성서적 설교 등으로 과목 자체가 바뀌기도 했고, 실습도 강화됐어요. 2008년에는 또 한 번 개정되어 영성훈련 과목을 신설했습니다. 지금은 영성훈련이 어느 신학교에나 있지만 우리 학교는 3년 6학기 커리큘럼에 모두 포함이 됩니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발전적으로 다양한 영성훈련을 하도록 하죠.
우리 학교는 세계선교를 위한 국제화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학과정이 영어과정과 한국어과정으로 운영됩니다. 세계 30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의도적으로 영어과정 비율을 60%로 높게 잡아요. 세계선교와 국제화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함이죠. 외부 인사들이 많이 참석하는 이취임식 같은 경우엔 한국어로 진행되지만 이 외에 졸업식이나 교수회의는 전부 영어로 이뤄집니다.
학교 특성상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특히 많아요. 이러한 영미권 교포학생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학교 분위기 자체를 국제적으로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 역사가 오래지 않아 졸업생이 1200여명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인재와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됐어요.
제3세계 외국인 학생들을 받아들여 전액 장학금을 주고 리더로 양성하는 전략적 선교도 우리 학교의 특징입니다. 그 친구들이 잘 배우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적어도 2년은 반드시 봉사하도록 합니다. 너희 민족을 먼저 섬기라는 원칙을 엄격히 요구하고 있죠.
하용조 목사님이 시작하신 ‘엔젤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교수와 재학생, 동문들이 연결되어 선교 현지에서 이뤄지는 선교훈련이에요. 교수는 강의로 돕고, 재학생들과 동문들은 프로그램으로 돕는 거죠. 선교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현지가 복음을 맞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인적 자원을 제공합니다. 처음에는 어디든지 원하는 대로 가다가 지금은 우리 졸업생들이 있는 나라에서 엔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의 회원으로서 협력하고 계신데, 독립 신학교로서의 특징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원체 교단이 강하다보니 독립교회에 대한 오해들이 특히 많은 것 같아요. 독립교회가 세계사적으로 어떻게 출발하여 이어져왔는지, 또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죠. 그래서 카이캄과 협력하는 위치에서 맡겨진 사명을 더 잘 감당하려고 합니다. 카이캄이 독립교회와 목회자들을 더 잘 도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것이 바로 우리 동문들을 돕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사실 사람들이 신학교에 지원할 때 자신이 지원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순수한 열정만 가지고 달려드는 경우가 많아요. 교단 정치를 배격하고 자유로운 사역을 위한다는 밝은 미래만 보고 우리 학교에 지원하기도 해요. 교단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독립교회는 누군가의 간섭이 없는 대신 스스로 모든 사역을 계획하고 일으켜 세워야 하거든요. 
기획력과 추진력, 뒷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없이 잘 해낼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부터 개척할 수 있는 의지와 방법을 잘 알려주고, 목회사역 강화 훈련을 다양하게 시도해서 학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위기 속에 있습니다. 칼빈을 전공한 학자로서 한국교회를 향한 제언을 하신다면?
제가 장로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잘 모르고 있다는 이유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칼빈의 목회 전반에 대한 것들을 보게 됐고, 장로교회가 칼빈의 신학을 너무 강요하기만 할 뿐 칼빈의 신학이 목회에 어떻게 접목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그래서 교회를 굉장히 율법적이고 보수적으로 보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의 기본적인 관심은 한국교회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칼빈의 목회가 우리에게 굉장한 준거점이 될 수 있기에 잘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칼빈은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목회를 했죠. 외국사람으로서 이민자로 목회를 했다는 것도 있고. 가톨릭의 배경에서 절기만 지키는 정도로 편안히 살았던 사람들이 굉장히 적극적인 목회를 해야 했던 것이죠. 긴 설교를 준비해야 하고, 설교대로 살아내야 하고, 교인들을 감독해야 했죠. 당연히 시민들의 반발이 컸고, 토착 유지들의 텃세, 같은 불어를 사용했지만 방언이 달라 고생하기도 했어요. 칼빈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결국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이고, 말씀으로 감동을 전하고 말씀을 지키도록 해야 하고, 지키지 않을 때 적절하게 권징도 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졌고,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훈련받은 목회자들이 말씀을 더 잘 전하고 지키려 노력해야 합니다. 잘 하시는 분도 많고 건강한 교회들도 많으니 우리가 다시 자라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전국신학대학협의회와 대학원대학교협의회 임원을 지냈고, 한국교회사학회에서 첫 여성학회장을 역임하셨죠. 아시아신학연맹(ATA)에서 2007년부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세계칼빈학회 아시아 대표, 국제복음주의신학교육협의회(ICETE) 박사과정위원회 공동의장 등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계십니다. 비결이라고 한다면?
하용조 목사님이 요청하셔서 2004년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하 목사님이 만나라는 사람도 많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됐죠. 그러다보니 국제적인 파트너십을 가진 곳이 굉장히 많아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일이 되고 재산이 된 거죠.
외국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에서는 소통이 제일 힘들다는 겁니다. 메일을 보내도 답장을 받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거에요. 보직이 자주 바뀌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통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제가 사실 이메일을 굉장히 열심히 잘 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늦더라도 반드시 답장을 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관계가 지속되어 네트웍이 만들어지고 저와 우리 학교에 힘이 된 거겠죠. 이런 것들이 저를 총장으로 추천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제가 바쁘다고 생각해서 잘 찾아오지 않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을 제일 좋아하구요. 총장이 돼서 제일 서운한 것은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적어졌다는 거에요. 연구를 계속하기 힘들다는 것도 아쉽고요.
앞으로는 논문보다는 학생들이 더 쉽게 읽고 적용할 수 있는 글을 집필해서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해볼까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소통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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