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교회 35th 생일, 역사의 증인들 한 자리에 모여

  • 입력 2015.11.19 08:18
  • 기자명 지미숙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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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올리는 소리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 할렐루야교회에 울려퍼졌다.

11월15일 할렐루야교회 창립 35주년 기념예배 현장은 기쁨과 환희, 감격과 영광 그 자체였다.

최순영 장로가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원로)에게 제안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여 시작된 할렐루야교회. 오전 8시와 10시, 오후 12시 예배엔 교회 창립의 주역인 이종윤 목사와 최순영 장로, 2대 담임 김상복 원로목사와 3대 담임 김승욱 목사가 함께했다. 이 목사가 서울교회로 목회지를 옮긴 후 3세대 담임목사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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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예배는 매 시간마다 역사의 증인을 자처한 성도들이 본당을 가득 채웠으며, 하나같이 달뜬 얼굴로 혹자는 눈물을 훔치며 감격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비들은 삶과 함께한 교회의 감격스러운 역사를 증거했고, 청년들은 함께 자라온 할렐루야교회의 역동적인 성장을 감사했으며, 아이들은 자부심에 가득 차 스피릿 파워를 선포했다.

1980년 한 가정에서 시작된 할렐루야교회는 1992년 양재동 횃불선교센터 시대를 거쳐 1997년 현재의 분당 야탑산에 아름다운 새성전 시대를 열고 한국과 세계를 섬기는 국제적 독립교회로 우뚝 섰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우리만큼 명확했다. 이종윤 목사는 당시 교수로 섬기고 있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할렐루야교회 초대 담임으로 부임했고, 김상복 목사는 거듭된 고사(苦辭) 속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으로 청빙에 응했으며, 김승욱 목사마저 세계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속에 부르심에 응답했다.

후임 청빙 과정에서 다투고 나뉘어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가 많은 때에 할렐루야교회는 모든 세대교체 과정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성장해온 것.

이러한 역사를 담은 ‘교회창립 35주년 기념영상’은 다시금 임마누엘 하나님을 찬양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35년 기적의 역사를 담은 기념영상에는 갖은 세상의 도전과 위기 속에서도 예수를 향한 믿음 하나만으로 전진해온 이야기가 역동적으로 담겨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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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예배에서 축사를 전한 이종윤 목사는 “오늘 할렐루야교회가 의무가 뭔지, 명예가 뭔지, 조국을 무엇으로 삼을지 깊이 묵상해야 한다”면서 “하나님의 목회를 마땅히 하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할렐루야교회는 독립교회로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기존 한국교회를 다 인정하고 흩어진 것을 하나로 만드는 연합의 정신으로 자라온 교회”라며 “Sola Scriptura(오직 성경),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Sola Gratia(오직 은혜), Sola Fide(오직 믿음), Sola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의 5대 솔라를 기초로 앞으로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만 영광 올리는 복된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이날 예배는 김상복 원로목사와 김승욱 담임목사가 ‘예수, 예수,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제로 함께 말씀을 전했다.

김상복 목사는 “할렐루야교회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오직 믿음으로 전진하고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이루실 것을 믿었다. 많은 도전 속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와 평화를 누리며 꿋꿋하게 전진하는 믿음의 모습이 할렐루야교회였다”며 “구원의 예수, 성화의 예수, 섬김의 예수 그 분 안에 승리가 있다”고 선포했다.

김승욱 목사는 “예수로 시작된 교회, 예수님을 위한 교회가 앞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주님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드리자. 5대 솔라의 토대 위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복음의 은혜의 해를 하나님의 사역으로 펼쳐갈 수 있길 바란다”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정의 회복, 사회의 변혁,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완성될 수 있기를 축복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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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교회는 학자들의 영성으로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며 튼튼한 기초와 비상의 역량을 갖춘 지금. 북한과 세계선교, 다음세대를 위한 비전을 선포하고 실현해 나가는 빛의 공동체로 우뚝 섰다.

“연합교회 롤 모델, 성경적 에큐메니컬 교회이길”

제1대 담임 이종윤 목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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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전 할렐루야교회 창립목사와 창립장로의 만남은 이미 주님의 예정하심으로 시작됐다.

당시 이종윤 목사는 신동아그룹 성경공부 강사로 최순영 장로를 만났는데 어느날 뜬금없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기도해 보세요”라고 했던 교회개척에 대한 권유는 그냥 한 말이 아니라 교회 부지마련, 설계도와 교회명까지도 이미 최장로는 일련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였던 이 목사는 당시 부학장 한철하 박사를 만나 고민거리를 털어놨다. “이거야말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한 박사는 교수라고 목회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냐며 내심 최장로를 이사장으로 생각했던터라며 환영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곧장 교회부지를 답사했다. 이 목사는 두 손을 모으며 간절히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구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외쳤다. “이 교회를 세우는 목적이 뭡니까” 잔잔히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씀은 “다른 교회를 섬기는 교회를 세워라”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할렐루야교회를 세우는 창립목사로의 다짐을 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의 목회를 한다. 바울이 복음의 종이라고 하듯 바울의 목회 즉, 예수님의 목회가 모델이다. 둘째, 연합교회로써 한국교회 본이 되는 교회를 세운다. 때문에 첫번째 최순영 장로가 장로장립을 받을 때 한경직(통합) 김창인(합동) 조향록(기장) 정진경(성결) 목사 등이 고시위원, 안수위원을 맡아 모범적인 교회가 되자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셋째, 신학이 있어야 하는데 개혁주의 신학을 모본으로 삼는다 등.

이 목사와 최 장로의 가정 7식구가 첫 예배를 드렸는데 한달만에 100명이 되었고 매달 100명 이상이 등록을 하게 되어 이 목사가 재임한 7년 반 동안 장년만 3,000여 명이라는 한국교회에 괄목한 성장과 획기적 부흥의 산 증거로 할렐루야교회는 우뚝 섰다.

떠난 얘기가 나오자 이 목사는 숙연한 표정으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도 울고 성도들도 많이 울었어요. 성도들에게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목회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황송한 심정은 잊을 수가 없지요.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모교회인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시며 ‘너 죽고 나 죽자’며 너무도 강력하게 요청을 하셔서 승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교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이었다. 최 장로가 독단적으로 땅을 사고 예배당 건축비용을 부담을 했는데 일년만에 복도까지 꽉 들어찬 성도들로 인해 결국 옆에 테니스장 부지가 필요했다. 금요기도회때 “예배당 다시 짓자”라고 선포하며 주인이 달라는 값을 다 주더라도 계약하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신동아건설 유상근 사장이 땅 주인을 만날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인이 스스로 값을 낮춰서 계약을 해 주어 결국 2년도 채 안 되어 기존 성전을 헐고 새로 지었다. 그 때 성도들의 자긍심은 고취됐고 어떤 성도는 너무 좋아서 버스안에서도 춤을 출 정도였으며 이후 신학대 교수와 목회자들이 대거 배출돼 모교회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할렐루야교회를 주축으로 영동교회 손봉호 목사, 강변교회 김명혁 목사 등과 함께 강남지역 평신도 신학강좌를 열었다. 얼마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지 나중에 옥한흠 홍정길 목사도 합류해서 신앙과 정치, 신앙과 제사문제 등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 관련된 유익한 강좌를 통해 많은 성도들에게 올곧은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조명하는데 이바지한 바 있다.

A(ardent)는 열렬한 목회-B(biblical preaching)는 성경적 설교-C(consistent program)는 일관된 프로그램 즉, 목회의 ABC를 설명하면서 교회의 가장 핵심은 설교라고 강조했다.

“할렐교회를 떠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열정어린 사랑으로 섬겼던 교회였다”

함께 창립했던 최장로에게도 당부 했던 기억이 있다. 할렐루야교회는 연합교회의 촉매역할로 개혁주의 신학을 실천하는 교회, 성경적 에큐메니컬 교회로 모범적인 교회가 되어서 한국교회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일과 바른신앙의 토대를 든든히 세워 나가길 거듭 기대한다.

두 번의 이전과 폭발적 부흥, 기적의 증인 되어

2대 담임 김상복 원로목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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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과 감사로 가슴이 메입니다. 하나님께서 할렐루야교회를 무척 사랑하시고 분에 넘치는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할렐루야교회 원로 김상복 목사는 대치동 개척시대와 양재동 횃불회관시대, 분당 야탑산 새성전시대를 거치면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며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할렐루야교회 35년 역사 속에서 2대 담임으로 부임해 21년간 헌신했다.

그는 워싱톤신학대학에서 잘 나가는 교수이자 발티모어에 5만평 대지의 교회 건축을 마치고 제2기 목회를 꿈꾸고 있었으며, 워싱톤기독교방송국을 운영하고 매달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하는 등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할렐루야교회와 횃불선교센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등 세 기관이 러브콜을 보낸 것. 심지어 교회 장로와 권사들, 아신대 한철하 총장, 합신의 박윤선 박사와 친구인 김명혁 목사, 손봉호 교수 등 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김 목사를 찾아와 귀국을 권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는 계속 거절했다.

2년 2개월이 지난 어느날 밤 10시 기도 중에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며 한국으로 가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셨다. 김 목사는 “그 명령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한 종으로서 다른 길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김상복 목사의 할렐루야교회 부임은 이뤄졌다.

하지만 할렐루야교회 담임과 아신대 조직신학 교수, 횃불선교원 실행위원장을 동시에 섬기면서 목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여가 지나자 대치동 건물에는 계속 불어나는 성도들로 인해 앉을 자리가 없었고, 매주 100~150대의 차들이 예배 드리러 왔다가 자리가 없어 다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당시 예수님이 하신 세 가지 사역인 구원의 복음선포(salvation), 양육을 통한 성화(sanctification),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섬김(service)에 주목한 김 목사의 ‘3S목회’로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났고 기쁨과 감사와 평화가 넘치는 모습을 서로 간에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었다고.

결국 비좁은 대치동을 떠나 2년 만에 양재동 횃불선교센터로 교회를 옮겼고, 이후 4년 만에 분당의 현재 성전을 완공하고 이전했다.

짧은 기간 두 번의 이사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떠날 것이라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사할 때마다 400~500명씩 늘어나는 기현상이 계속됐다.

그렇게 지내온 35년. 할렐루야교회는 한국에 최초로 세워진 독립교회로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해 왔다. 교단의 벽이 높아 교회들 간에도 교류의 여부를 총회에서 결정하고 하나님의 자녀들 간에 자유로운 교제를 하지 못하게 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이단이 아닌 모든 교회를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자유로운 교류를 추구해 왔다.

김 목사는 “할렐루야교회는 계속 걸어온 35년 동안의 길을 김승욱 목사의 목회지도 하에서 과거처럼 묵묵히 계속 걸어갈 것이다. 교회와 교단 간에 폭넓은 교제와 연합을 도모하는 일에 노력할 것이며, 새로운 지도자들이 믿음과 용기와 헌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데 계속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작은 한 가정이 부모를 기리기 위해 시작했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었고, 그 목적을 과감하게 순종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기뻐한다”며 “할렐루야교회가 축복의 채널로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기쁨을 전했다.

연합의 도구로써 모든 교회와 하나 되어

담임 김승욱 목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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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교회 창립 35주년을 맞은 김승욱 목사는 감격, 감사,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 목사는 “지난 35년 동안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주님의 연합의 도구로 서게 하셨다. 앞으로는 갑절의 영성을 받아 이 사명을 주님의 날까지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한다”며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이 소명에 충성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 할렐루야교회를 독립교회로 세워주셨기에 우리의 정체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합의 도구다. 독립이라는 것은 우리만 따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교회와 하나가 되어서 함께 가겠다는 뜻”이라며 “교단과 목회자의 타이틀을 내세우지 않고 연합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여 연합의 도구가 되는 사역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번 35주년 기념예배에 이종윤 목사와 김상복 목사가 함께 참여해 예배를 드리니 특별히 감격이 크다며 “역사 없이 새로운 기둥을 세울 수는 없다. 이분들의 강건한 토대 위에 튼튼한 기둥이 세워지고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김 목사는 “이종윤 목사님은 우리교회를 시작하신 분이고 한국교회에 신학자로 잘 알려진 분이다. 독립교회지만 굉장히 탄탄한 복음주의 신앙과 성서중심의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그 업적을 기렸다.

또 “김상복 목사님은 21년 사역하시면서 분당 성전으로 이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고 독립교회의 리더로 계속 섬겨오신 분이다. 은퇴하고 나서 새로운 담임이 오셨으니 저를 자신의 담임목사라고 선포하시고 섬겨주신다. 엄청난 축복”이라고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김 목사는 한국 최초의 독립교회로서 할렐루야교회가, 연합의 도구로서 주님의 모든 교회와 하나가 되어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내부적으로는 훈련사역과 소그룹 사역에 포커스를 두고, 교회로서의 정체성에 있어서는 다음세대와 북한, 세계선교에 주목하여 사역을 집중하고 있다.

할렐루야교회의 담임목회자는 하나같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청빙에 응하게 됐다. 김 목사도 11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그곳에서 학업을 마쳤고, 미국을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목회를 하던 사람이다.

그러던 중 할렐루야교회 청빙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김 목사 청빙을 결정했으나 그는 미국에서의 사역을 중단할 아무런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성공적인 사역 속에 많은 열매들이 맺혔고, 첫 안식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할렐루야교회 모든 이들의 만장일치 결정이 김 목사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넘어 기도를 하게 했고, 하나님은 점점 그의 마음 속에 북한과 세계선교의 비전을 그려주셨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셔서 순종하며 왔다. 무엇보다도 만장일치의 청빙 프로세스가 가장 중요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나름대로는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사역을 계속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 높은 곳에 있다”며 “순종의 이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기꺼이 순종했다”고 말했다.

할렐루야교회 공동체에 메시지를 전한 김 목사는 “35년은 70년의 딱 반이다. 사도바울이 이전 것은 지나갔다며 푯대를 보고 나아갔듯이 전진의 스피릿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지난 일들에 감사하지만 향수에 취하지 않고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전진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합의 장으로 나아가 더욱 큰 축복을”

최순영 장립장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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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1월 16일 서울 대치동 할렐루야교회 입당예배.

바야흐로 35년 전, 할렐루야교회의 행보는 주님의 섭리로 시작됐다. 1년간 신동아그룹 성경공부 인도를 하던 이종윤 목사에게 교회를 개척하자는 최순영 장로의 제안은 결국 영적인 꼴을 먹이는 목자 그리고 재정을 담당하며 봉사할 최순영 장로(당시 집사), 이형자 권사의 역할분담으로 자연스럽게 결합된 열매였다.

기도응답의 확신임을 믿던 최 장로에겐 조금도 미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수레의 두 바퀴가 완성되었고 주님의 인애와 자비로 지금까지 선한 목적을 향해 쉼 없이 달려왔다.

한창 부흥가도를 달리던 할렐루야교회에 예상치 못했던 태풍이 불었다. 이종윤 목사의 갑작스런 이별을 마주한 교인들의 반대와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창립 당시부터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이들은 지금도 아쉬움이 상기될 정도로 큰 충격과 아픔을 겪어야 했고 이후 3년 정도 목자의 빈자리에 유명한 목사들을 통해 젖을 먹었던 시절이었다.

마침내 제2대 담임목사로 김상복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모셔 오기로 작정하며 그 일을 위해 기도에 매달렸다. 당시 김 목사는 워싱턴 DC에 교회를 새로 건축하고 대형목회를 하던 때라 한국에 나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할렐루야교회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셨는지 김 목사가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된다. ‘KOREA'란 글자를 보이시며 가라고 역사하셨다. 이후 원로목사님이 되시기까지 21년을 담임으로 섬겼다.

불과 2년도 안돼서 대치동 성전으로는 교인들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1991년 9월 26일 횃불선교원이 완성될 무렵 기존교회를 정리하고 임시로 양재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부지를 돌아보던 중 이형자 권사가 YWCA모임에 갔다가 땅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오가는 말이 분당에 큰 땅이 나오는데 종교부지라는 소리가 명료하게 들렸다. 당시 시내 종교부지는 500평으로 제한했지만 변두리는 규제를 완화했다. 4,000평 사찰 부지를 매물로 내놓아도 1년간 거래가 없자 결국 주택공사가 공개입찰을 시도했다. 그런데 기독교라도 허용해서 선착순 입찰하고 분할상환대금을 한다며 공고했다.

그 소식을 접한 최 장로는 긴급회의를 소집, 김 목사와 속내를 나누게 된다. 일시불로 매입할 형편은 안 되지만 5년 분할상환이라는 여지가 있었다. 계약금을 준비해 이른 아침부터 선착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참으로 손에 땀을 쥔 순간이었다. 하지만 IMF라는 거대한 장벽을 만났다.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성도들의 눈물이 있었지만 실 평수 2만평이라는 규모로 아름답게 할렐루야교회가 세워졌다. 모든 것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1999년 사업가 최 장로에게 가장 큰 해일이 닥쳤다. 분노와 미움을 뒤로 그들을 용서하고 16년째 인내와 끈기로 다시 하나님께서 회복주시리라 믿고 기다리고 있다. 최 장로는 할렐루야교회의 놀라운 회복의 때와 같은 맥락이라는 확신을 저버리지 않는다.

35주년을 앞두고 본 교회 역사를 후손들에게 계승할 때,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들을 통해서 선배들의 신앙정신 내지는 아픔을 그대로 덮지 말고 손에 손을 잡고 화합하는 모습이 가장 의미 있는 기념주일이 될 것으로 보고 창립목사 이종윤 목사, 제2대 김상복 목사, 현 담임 김승욱 목사와 온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께 큰 영광을 드리기를 소망했다.

최 장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소통하고 연합할 때 하늘에서도 신령한 은총으로 화답해 주실 것을 믿으며 도래하는 회복의 때를 향한 소망의 항구로 향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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