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인법 제정에 앞서

  • 입력 2016.10.07 09:38
  • 기자명 컵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다 아는 성경 말씀 가운데 누가복음10장 2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찾아온 한 율법교사에게 주님이 들려주시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즉 강도를 만나 소지품을 다 뺏기고 초죽음이 되다시피 한 이웃을 보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쳐 갔지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를 외면하지 않고 그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영생의 길을 묻는 율법 교사를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사회에 드물게나마 이런 착한 이웃이 간혹 등장하기는 하나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매우 안타깝다. 문제는 그 원인이 참 황당하기까지 하다는 데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자칫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다가 되레 가해자로 몰려 낭패를 보거나 심한 경우 생명을 잃게 되는 일까지 일어나곤 하여 선뜻 착한사마리아인처럼 의로운 행동을 하라고 말하기조차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니 도덕적으로 비난은 할지언정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고민해보아야 할 현실이다. 점차 우리나라도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어가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성추행 등 위급한 상황에 대해 왜 도와주지 않았느냐를 가지고 법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안다. 이러한 현실임에도 매우 다행이라 여겨지는 것은 올 가을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적어도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다루어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응급상황에 대한 구조 불이행에 있어 이를 법적으로 제재를 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 같은데 이미 국민들 가슴에 널리 박혀 있는 부정적인 시각을 어떻게 걷어내느냐 하는 것이 선결과제가 될 것 같다. 즉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다가 내가 되레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오히려 눈을 가리고 현장을 도피하는 경우가 더 많이 발생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이다. 또 더러는 그러다가 내가 오히려 상해를 입거나 생명을 잃을 경우 보상은 누가 해줄 것이며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 하는 등의 문제가 앞서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모처럼 주님이 하신 말씀을 세상이 교훈으로 삼겠다니 흐뭇하기는 하나 생각해야 할 점도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