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뻔뻔함이 두렵다

  • 입력 2016.12.02 14:0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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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격다짐으로 억지 부리는 고약한 인간임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이라 하여 받들어 잘 섬기는 것이 성도의 도리라고 가르친다면 얻을 수 있는 긍정의 표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가끔씩 오늘의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마다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 가운데하나이다. 언제부터라고 기준을 잡을 수는 없지만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신성한교회가 마치 성범죄의 온상이라도 된 듯 교회를 향해 험구(險口)를 쏟아내기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그토록 난도질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강단을 지키고 있는 목사들이 한 둘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의 모진 말과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 뻔뻔함을 더러 ‘담대함’이라고 미화하고 감싸주기까지 함으로써 자신들은 모르는 사이 한국 교회 전체를 욕되게 하는 사태까지 불러오기도 한다.

 

단지 그와 친하다는 것과 자신의 신앙적 코드와 잘 맞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그를 따르고 함께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먼저 한국 교회와 사회를 향한 사죄의 태도를 앞서 보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것조차도 없이 마치 자신들이 이유 없이 고난 받는 백성들인 양 하는 모습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적절치 못함을 알아야할 것이다. 예수님이 그토록 힘주어 가르쳐주신 ‘용서’가 없는 교회도 문제이겠으나 그보다는 먼저 교회 앞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추호도 회개함이 없이 오직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은 무슨 짓을 해도 옳다는 식으로 막무가내일 때는 문제가 적잖이 심각해진다.

 

급기야 자신을 따르는 일단의 무리들을 규합하여 나가 따로 교회의 간판을 걸고 보란 듯이 행세를 하는 모습에서 세상의 민심은 점점 교회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궤변과 억지로 자신들은 위안을 얻고 만족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나 그로인해 한국 교회는 점점 더 큰 상처를 받고 아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근자에 또 어느 교회에서 여자 성도와의 아름답지 못한 일로 총회 재판국으로 부터 출교를 당한 어느 목사가 담임으로 있었던 교회 인근에 또 다른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불러 모은다는 소문이다. 교회가 쪼개지는 소리도 두렵거니와 소문이 세상으로 번져 나가 부풀려져 돌아올 손가락질은 더 두렵다. 아니, 그 얼굴의 뻔뻔함은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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