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의무 앞에서 고민하는 MK(선교사자녀)들

  • 입력 2017.01.24 14:09
  • 기자명 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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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기피하려면 국적포기…부적응 감수하고 입대하는 MK들

“낯선 고향에서 아버지와 기성세대를 피부로 배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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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영주권을 가졌거나 영주할 목적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재외국민, 재외동포로 취급된다. 직계존속이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체류하면서 출생한 경우라면 복수국적자인 대한민국 남성은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 말까지 국적 포기를 할 수 있다.

이때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여 외국인이 된 경우에는 38세 이후에나 재외동포체류자격이 부여된다. 만약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때에는 병역면제 처분이 취소되고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국외이주자의 병역면제 처분이 취소되는 경우는 △영주할 목적으로 귀국한 사람 △18세부터 국내 체재기간이 통산 3년을 초과할 경우 △1년의 기간 중 통틀어 60일을 초과하여 국내 체재한 사실이 있는 경우 △국내 취업 등 영리활동을 하는 것으로 확인된 사람 등이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2015년 조사에 의하면, 선교사 자녀(MK)의 수는 1만8543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의 성인 남성 MK들이 병역의무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한국의 육군 복무기간은 21개월, 해군이 23개월, 공군이 24개월로 2년여 적지 않은 기간이다. 보통의 한국 성인 남성들도 학업, 진로, 생업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기간이다. 타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MK들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이 필요한 기간이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보통의 남성들에 비해 사회·언어·문화적 영역에서 다양한 부적응을 겪을 수 있다.

초문화적 MK 제자 선교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MCC와 TCK WAVE는 청년·대학생 MK들에게 군생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23~24일까지 서울 강남 남부순환로에 위치한 서향교회에서 ‘크리스찬 청년으로 군대에서 살아남기’ 군입대 세미나를 개최했다.

첫날 주강사로 나선 이훈 선교사는 ‘문화 적응능력 모델’을 주제로 외국문화, 한국문화, 군대문화 적응능력 테스트와 워크샵을 진행했다. 먼저 이 선교사는 성장기의 중요한 시기를 선교지 혹은 타문화권에서 보낸 MK들의 다른 이름인 TCK(Third Culture Kid: 제3문화 아이) 이슈와 개념을 설명했다.

TCK란 성장기의 중요한 시기를 부모 문화(제1문화)가 아닌 타문화(제2문화)에서 보낸 사람을 지칭한다. MK들은 제1문화도 제2문화도 아닌 제3문화권에 살아가게 된다는 해석이다.

이 선교사는 “군입대는 MK들에게 ‘낯선 고향’같은 모국 땅 한국에서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아로서 한국을 배우고, 아버지와 기성세대를 피부로 배우는 시간”이라고 설명하고 사회와 나, 나와 기독교, 기독교와 군문화 등 MK로서 새롭게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각각의 문화적 차이점과 공통점을 워크샵을 통해 체득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

이날 참석한 MK들은 워크샵을 통해 본인과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청년 MK들과 또 한국에서 쭉 자라난 청년들, MCC 상담가들과 함께 나누며 생각해보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날 선배MK들의 군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패널 디스커션 시간이 마련됐다. 주요 패널로는 해병대를 전역한 이슬기 강도사(부천참빛교회, 파라과이 MK), 해군 출신 신지호 청년(한동대학교 4학년, 중국 MK), 카투사(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 출신 전홍천 목사(온누리교회 서빙고 영어예배 담당) 등이 참석했다.

패널들은 군복무에 앞서 군생활에 대한 부정적 인식, 부조리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군복무를 마친 현재 부정적 인식보다는 2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얻어진 것이 더 많다는 것에도 동의했다.

전홍천 목사는 “한 살 위의 친형이 육군 GOP에서 최전방 근무를 했다. 그래서 당연히 군대 가면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복무를 마친 지금 되돌아보면 군복무 2년이 안식년이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신지호 청년 또한 “군대에 가면 선임이 괴롭힐 것이라는 등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부풀어진 이야기였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공간이고, 사회생활의 범주 안에 있다는 점에서 많이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이슬기 강도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군대 앨범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하게 됐고, 군대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해외 영주권자일 경우 군대에 안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군대에 가고픈 마음이 더 컸다”고 전했다.

세 명의 선배 MK 패널 모두 군복무 중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인간관계와 가치관 충돌이었다. 신지호 청년은 “육체적인 어려움은 순간이고, 힘든 것은 인간관계였다. 부대원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부딪히는 사람들이 꼭 한두 명씩 있었다”고 말했다.

이슬기 강도사는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정체성 문제였다. 선임에게 혼나고 구타를 당한 적이 있는데, ‘왜 내가 굳이 파라과이에서 군대라는 또 다른 세계에 왜 와있는 것일까’하고 고민했다”며 “하나님 자녀 된 기쁨을 누리고 싶은데, 한 인격체로서의 모든 것이 박탈당한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선임병이 된 후에도 이 강도사의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후임병을 구타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입대했는데, 후임병을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 회고하며 “후임을 혼내지 않고 혼자 천사인 척 하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최대한 인격적으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홍천 목사는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다니고 늦은 나이에 군복무를 해서 열 살 어린 사람들과 군생활을 했다”며 “저의 경우 사회와 교회에서 많은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가니 오히려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이 덜했다. 너무 일찍 군대를 가는 게 군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아닐까 싶다”고 주장했다.

패널들은 군생활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가감 없이 나누고, 후배 MK들의 질의에 풍성한 답변으로 응답했다.

이날 참가한 한 청년은 “군생활에 대한 실제적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군입대를 앞두고 저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에서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며 “군대를 부담감보다는 하나님과의 1:1 신앙 성숙으로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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