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창세기 3:8~21)

  • 입력 2017.02.09 14:3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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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석 목사(강남중앙교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모세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역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에서 만난 하나님을 먼저 쓸 수도 있었고, 조상들의 하나님에 관해서 나타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본 적 없는 아득한 역사로부터 시작하고, 또 오늘 아담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내가 들어야 합니까? 인간에게는 본질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인간이 뭐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냐?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브라함을 지나고 아담을 지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위에 하나님이시더라”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인류의 근원인 하나님께 가 닿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됩니까? 나의 뿌리, 나의 정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왜 최상의 상태만이 아니라 최악의 상태에서도 아담을 찾고 부르십니까? 성경은 결국 무엇을 나타냅니까? “아담아, 어디 있느냐? 왜 숨었느냐? 왜 피하고 도망치느냐?” 목숨도 아끼지 않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을 겁니다. 하나님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아담을 버려둘 수 없었고, 버릴 수 없었습니다. 뱀의 유혹은 하나님처럼 된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면 창조의 모든 풍요로움도 사라집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노래, ‘아가서’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도, 계시록에서도 당신이 얼마나 빛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와 함께하기를 절실하게 바라는지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희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전히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뭡니까? 도망가도, 숨어도, 피해도 여전히 당신 편으로 불러내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목표를 성취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닿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빛나지 않으면 결코 온전한 행복도, 만족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인간은 사랑 받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담’이라고 하는 말은 ‘흙’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담아” 하는 것은 어떻게 들으면 “인간아” 하는 것과 같은 말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베드로야. 도마야. 요한아.” 하는 음성과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그 말은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아, 어디 있느냐?” 오늘 나는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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