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예수상’을 세우기 전에

  • 입력 2014.07.30 13:40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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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대속(代贖)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 로마는 이방인을 위해 끔찍한 고난을 주기 위해 십자가형을 고안해 냈다. 유대에서도 범죄자를 나무에 달려 죽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가장 고통스럽고, 저주스런 죽음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저주와 고통의 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을 살리는 상징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저주의 십자가가 자랑의 십자가가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다.(고전2:2)

 

그렇다고 기독교는 십자가를 섬김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개신교)는 성상(聖像), 성물(聖物), 성화(聖畵,) 성인(聖人), 마리아 등 어떤 인간적 존재를 숭앙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또 ‘예수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도 허락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이다.(출20:4~5)

 

그런데 최근에 전남 순천 지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수상’을 만들려 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만들어, 지역의 관광자원과 연동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조형물을 만들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문제로 교계가 분열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의 교리와 전통, 정서가 있는데, 이를 강행하려 한다면, 의견 분열로 인하여 득(得)보다 실(失)이 클 것이다.

 

둘째는 전남 순천지역은 우리에게 “사랑의 원자탄”으로 널리 알려진 고 손양원 목사님의 활동 지역이었다. 손 목사님은 ‘용서’와 ‘사랑’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의 벗이요, 치료자였다. 그 분의 신앙은 결코 화려함이나 세상에서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셋째는 종교개혁 정신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중세 암흑시대 교회는 하나님 사랑보다 살아 있는 종교 지도자들과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는데, 이를 배격하고 바른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를 생각해야 한다. 이 시대 예수님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어떤 모습의 ‘예수상’을 만든단 말인가? 또 어떤 형태의 ‘예수상’을 만든다고 하여도, 결국은 타종교에서 행하는 ‘우상숭배’를 답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다행히 주최하는 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아직은 계획 단계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의 예수상을 세우기에 앞서서, 어떤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칫 기독교 순례지가 기독교인들에게 분열의 빌미가 되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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