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항구

  • 입력 2017.04.14 14:2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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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현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로필]
▣ 순복음 신학교 교수
▣ 前 일기연, 42대 고양시기독교연합회장
▣ 사랑이 있는 마을 담임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 웰 다잉 전문 강사, 암을 이기는 건강세미나 강사  

사람들은 가끔씩 드넓은 바다, 망망대해 위를 배를 타고 항해하는 멋진 장면을 연상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바다는 낭만을 연상하게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닷가 도시로 여행을 가면 배를 타고 낭만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하지만 그 멋지고 낭만적인 항해는 폭풍을 만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무리 멋진 항해, 낭만적인 여행도 폭풍을 만나면 한 순간 다 깨지고 맙니다. 바다는 사람들이 단순히 생각하는 것처럼 멋지고 낭만이 있는 곳만은 아닙니다. 바다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파도가 있고, 때때로 무서운 폭풍이 일어납니다. 파도가 없다면 바다가 아닙니다. 항해는 평탄하지 않습니다. 시편 107편을 보면 폭풍을 만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 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 도다”(26~27).집채 만 한 파도가 배를 때리면 배는 마치 장난감처럼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곧바로 수직 낙하합니다. 배 안으로 물은 쏟아져 들어오고 돛대는 부러지고 노를 아무리 저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목숨 걸고 폭풍과 싸우다가 벗어나면 다행이지만 수많은 배는 그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뒤집어지거나 바다 속 깊이 영원히 침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뱃사람이나 어부들에게 ‘항해’라는 낱말은 결코 낭만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바다는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의 현장입니다. 항해는 파도를 각오해야 합니다. 풍랑이 무섭다고 배를 선착장에만 정박시키고 있다면 어찌 그 배를 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배가 항구를 떠나 출항한다는 것은 폭풍과 파도를 만나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의 항해에도 고난의 파도가 있습니다. 파랑과 너울은 바다의 민낯입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크기와 횟수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인생의 바다로 항해를 하다보면 폭풍과 거친 파도를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은 다행히 그 폭풍을 이겨내고 헤쳐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배라 할지라도 태풍이 불어오면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바다에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풍랑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찬송가는 존 뉴턴이 작사한 것입니다. 존 뉴턴은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10살 때 배를탔습니다.

 

18살 때 영국 해군이 되어 전함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노예선에서 근무하며 당시 성행하던 노예 매매업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살겠다고 밤새도록 물을 퍼내고 아우성을 치는 중에 저 멀리서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왔습니다. 순간 뉴턴의 입에서는 “주여 제발 살려 주소서”라는 기도가 나왔고 지난날의 잘못된 삶을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파도가 점차 약해지더니 이내 잔잔한 물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다른 배를 통해 구출되었습니다. 이후 존 뉴턴은 노예 매매업을 집어 치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항해입니다. 그러나 끝이 없는 항해는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짧게 끝나는 항해일 수 있고 길고긴 항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길고 긴 항해라도 그 항해의 끝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항해가 끝나고 도착하게 될 항구는 어디일까요? 하늘 항구입니다. 그곳에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영혼의 닻이 하늘에 닿아 있다면 그 뱃길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야할 분명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향해 돛을 펼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일은 이미 예수님은 알고 있으셨고, 우리 때문에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 부활의 날에 컴컴한 새벽이 물러가고 마침내 해는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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