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동역자 되어

  • 입력 2017.04.14 14:4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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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날, 소문을 들은 군중들이 연도에 나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환호할 때 한쪽 뒤편에서 이를 말없이 지켜보는 한 촌부(村夫)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라 하였고, 지중해 연안의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구레네」 사람이었다. 마침 유월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의 입성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나귀 중에서도 작은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그의 심경은 매우 복잡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항간에 들리기는 ‘유대인의 새 왕’이 되실 분이라는데 저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오다니… 라는 의구심과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의 환호는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이다. 이러구러 며칠의 시간이 지나 들은 소식에 의하면 전날의 그 환호와 찬양을 받던 사람이 십자가형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하기만 했던 시몬이 길을 물어 골고다로 갔을 때 거기에는 참으로 눈을 의심할 만큼의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연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찬양을 받던 전날의 그가 이렇게 피투성이가 된 채 통나무 십자가를 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니…. 쓰러졌다 일어서고를 반복하는 그를 그저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몬에게 로마 병사 하나가 다가와 ‘네가 대신 지라’고 억지로 명을 한다(마태복음 27:32). 기록된 바로는 아마 아무런 대꾸 한 마디 없이 순종했던 것 같다. 순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대목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비록 로마 병사의 말대로 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게 된 것이니 그 한 순간의 고통과 수난은 결국 축복인 셈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결코 이 남자, 시몬이 ‘왜 하필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한테 시키느냐?’는 한 마디 항변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서슬 퍼런 로마 병사의 면전에서 그렇게 항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으나 마치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제자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듯이 주님의 고난에 동역(同役)하는 모습이다. 이 일후 그의 이름이 성경에서 크게 조명을 받는 일도 없다. 그저 조용히 잊혀진 이름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순종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기록을 마칠 때가 이르러 시몬의 아내이자 아들 루포의 어머니를 ‘곧 내 어머니’라 칭하며 정중히 문안하는 편지를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로마서 16:32).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의 문안을 받는 스물여섯 명의 동역자들 가운데 그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루포의 어머니가 당당히 올라 있음을 보게 된다. 성경이 일러 말하기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 하였고, 사도 바울의 ‘이름없는 동역자들’이었으며, ‘주의 일에 많이 수고하고 애쓴 사람들’, ‘주의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2017년 부활절 아침에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정 우리가 부활의 아침에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 구레네 사람 시몬일는지도 모른다. 그는 많이 배운 사람이라는 기록도 없다. 그가 권세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명예를 바라고 돈을 많이 기부했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짐작컨대 아마 지중해 연안 작은 마을의 가난한 촌부였을 것이다. 로마서가 알려주는 바울 사도의 편지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던 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이후 고향 구레네에 돌아와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 함께 주의 제자가 되었으며, 바울이 복음 사역하는 곳에 동역하였던 숨은 조력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구레네 사람 시몬의 순종, 그것은 오늘의 한국 교회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표상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이 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임에도 참여하기를 꺼리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자신이출석하는 교회의 이름이 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아는 성도들, 과연 우리는 예수님부활의 의미를 진정으로 아는 자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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