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교회 본질을 망각해서 욕먹는 한국교회

  • 입력 2014.07.24 15:49
  • 기자명 신성남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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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의 유대교는 스스로 정통을 자랑하던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부하였고 누구도 감히 교권에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온 백성이 모두 신도였으니 교세 역시 막강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건물 헤롯성전을 자랑했고 적어도 겉으로는 율법도 잘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와 연보도 잘하였습니다. 아마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당시 유대교는 정통성을 매우 잘 갖춘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유대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독사의 새끼들’ 이라는 극언을 퍼부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겉과 속이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의 압제 아래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사욕을 따르며 도리어 백성을 수탈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 라는 표현이 이들의 배도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역시 당시 유대교 부패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건물 신앙’은 교회 사이비화의 전조
진리에는 무지하고 무관심하였으나 건축에 몰두하며 교세확장에만 열심이던 교회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세 교회입니다. 특히 1625년 11월,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완공되기까지 무려 120년이 걸린 성베드로대성당의 증축은 교회사적인 사건입니다. 엄청난 헌금과 수고가 이 건물에 소모되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가 성베드로대성당의 증축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면서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떨어지는 순간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과 친족의 영혼까지도 지옥에서 구제받아 천국으로 간다”는 거짓말을 하여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이를 비판하게 되었고 그 결과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이 정도로 유치한 거짓말에도 신도들이 쉽게 잘 속아 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화한 많은 교회에서는 지도자들이나 신도들이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 ‘성전 건축’ 이니 ‘정당한 세습’ 이니 하며 불의한 거짓을 교묘히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부패할 때는 희한하게도 꼭 ‘헌금 독려’ 나 십일조 강요로 그 자폐적 증상이 시작되고, ‘건물 신앙’ 으로 그 타락의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건물을 ‘성전’ 이라고 오도하거나 그 부지를 ‘땅 밟기’ 하며 신성시하는 행위가 교세 확장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별도의 성전이나 거룩한 땅이란 결코 없습니다. 신자들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성지, 성인, 그리고 성물을 따로 구분하고 신성시하는 행위는 중세 교회의 미신적 악습일 뿐입니다. 바른 교회는 진리의 전파에 힘을 쏟는 반면에, 사이비나 이단은 언제나 기만적 잔꾀를 부리며 외형적 교세 확장에 애를 씁니다.
그런데 과거 유대교나 중세 교회가 그토록 큰 건물을 짓고 아름답게 치장하였으나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교세가 확장된 것이 바로 진리의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유대교는 오히려 불과 한 세대 만에 로마군에 의해 그들이 자랑하던 헤롯성전과 함께 처참하게 멸망했습니다.
한국 개신교를 제외한다면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가 중세 교회입니다. 진리는 왜곡되고 직분자들은 부패했습니다.
신도들의 맹신과 무지 속에서 일부 사제들이 처자식까지 두고 교회 재산을 횡령하고 사유화하였습니다. 많은 수도원의 지하에서 유아들의 시신이 나왔습니다. 수녀원의 화장실에 아이들이 버려지고 갓난아기의 사체가 벽 속에 숨겨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독선적 교리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모두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였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증거하는 이런 아픈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천사가 타락하면 사단이 되는 것이고, 정통이 타락하면 바로 사이비나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 떼어먹는 교회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말 3:8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탄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삶과 그 가르침을 따라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공의를 지키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주일 예배에 잘 참석하고, 헌금 잘하고, 심방 잘하고, 그리고 봉사를 잘해 그 결과 세속적 복을 듬뿍 받으라는 그런 수준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신자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지엽적인 것들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시고,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귀한 삶이 어찌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정도에서 충족될 수 있을까요?
일부 귀족 목사들의 상투적 선전처럼 ‘예수를 잘 믿으면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예수를 믿지 않는데도 잘사는 나라들을 어찌 해석해야 합니까? 또한, 많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는 저주를 받은 것인가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잘 먹고 잘사는 길이 아니라 도리어 고난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 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가요? 백성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바른 모습입니다.
참된 선교 역시 백성의 마음속에 진리가 확장되고 정의를 흐르게 하는 것이지, 단순히 외형적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 선교사나 목회자가 부족하여 전도가 잘 안 되고 교회 성장이 둔화하였다고 보십니까? 요즘 길에서 행인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번 말해 보십시오. 아마 욕을 안 먹으면 크게 다행일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신도들이 신자답지 못한데 누가 예수를 믿으려 하겠습니까?
과연 거대하고 화려한 성베드로대성당에서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의 모습이 느껴지십니까? 또한, 한국의 수백억 또는 수천억짜리 대형 교회당에서 병든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시던 가난한 목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제사장적 가운을 걸치고 화려한 대형 교회 높은 강단에 선 자들이 정말 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건물에 대한 투자는 적정선에서 반드시 절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결코 돕지 않는다”는 다소 풍자적인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를 전심으로 계속 도우면 결코 부자가 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한국 중대형 교회들이 부동산 부자가 된 것은 결국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경시하고 열심히 돕지 않았다는 강한 반증이 됩니다.
교회는 재산을 최소화하고 주머니를 비우며 스스로 가난해져야 합니다. 건물을 절박해 하면서 사람은 경시하는 교회, 이는 병든 교회입니다. 이웃 작은 교회들이 셋방살이 좁은 예배당조차 다 채우지 못해 노심초사하건만, 한국의 중대형 교회들은 여전히 확장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미자립 교회들을 돕는 것 자체가 매우 좋은 선교이건만, 그들이 죽든 말든 자신만 키우겠다는 그 심보가 매우 비신앙적입니다. 하여튼 대형 교회 하나가 증축되면 근처의 작은 교회 수십 개가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 많은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등록한 첫날부터 헌금 채를 내밀거나, 십일조를 제대로 못 하면 차별하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정상적인 교회생활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거둔 돈이 과연 어디에 쓰이고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십일조를 선교나 건축에 사용하라고 가르쳤던가요? 왜 걷을 때는 성경대로 한다고 호들갑 떨면서 막상 쓸 때는 성경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사용하지 않습니까? 본래 가난한 이들의 몫인 십일조를 도대체 어떤 종놈이 감히 함부로 가로채는 것입니까? 목사들 연봉은 제때에 꼬박꼬박 잘 챙겨 가면서, 왜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즉시 나누어 주지 않습니까?
가끔 보면 십일조를 안 하면 주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신도들에게 호통 치는 목사들이 있는데, 이런 말은 먼저 목사나 장로들에게 해야 적합하지 않습니까? 구약 말라기 시대에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한국교회 수입의 절대 액수가 이 십일조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체로 합심하여’ 가난한 이들의 것을 도적질하는 교회가 하늘 아래 또 어디 있습니까? 그동안 한국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피처럼 소중할 엄청난 액수의 십일조를 거의 통째로 다 떼어먹고 이처럼 땅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사실은 십일조뿐만이 아니라 연보 역시 본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글은 교회당 건물이 필요가 없다거나 또는 외적 성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매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한 건물도 필요하고 건강한 성장도 소중합니다. 다만 교회가 내면적 본질과 우선적 사역을 잃고 지나치게 겉만 치장하는 오류를 깊이 반성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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