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할 이유 있네. (1) (사사기 5:1~5)

  • 입력 2017.09.21 10:5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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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지난 글들을 통해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가나안의 손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폈습니다. 더불어 이 일하심이 드보라 사사와 그의 조력자 바락을 통해 이루어졌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상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지혜와 지략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하심 때문이었음을 지난 지면을 통해공부했습니다. 그러기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쟁취한 두 사람은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높여드리며 그 분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오늘부터 몇 주 동안 저와 독자들이 함께 나눌 사사기 5장의 파노라마입니다.

본문 1~3절에서 사사기 기자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노래한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보십시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4~5절을 연이어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 하였도다” 이 구절에 대해서 학문적 기초가 튼튼한 해석이라고 필자가 동의한 석의는 트랜트 버틀러 교수의 해석입니다. 그는 4~5절을 ‘신현현’(Theophany)의 차원으로 접근하며 해석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에돔(세일은 에돔의 옛 이름)산에서부터 오시는 것에 관한 것이거나, 혹은 새롭게 단장한 변형된 형태를 제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가나안 사람들의 병거 소리들을 야웨 하나님의 발걸음 소리와 비교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를 주시는 것은 전쟁에서 패주하는 것과 비교하기 위해서 사용된 표현으로 여겨진다.”(트렌트 버틀러, “사사기” WBC 주석 8, p,407.) 버틀러의 말대로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한 이유를 적용한다면 분명 시스라 군대와의 운명을 건 접전이 벌어진 다볼 산 전투에서 중과부적의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머쥔 바락이 월등한 군사력과 인간적인 탁월한 전술에 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그 전투 장소로 직접 내려오셔서(신현현)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의 그 일하심 때문임을 알고 그 감격을 회상하며 부른 승리의 노래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주석적 근거를 토대로 본문에서 추출할 수 있는 영적인 테제는 그렇다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노래할 이유는 나에게 오늘도 민감하게 임재하시는 현재적 성육신의 은혜 때문입니다.

필자는 목회 현장에서 30년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하나님께서 위탁해 주신 양들과 함께 동고동락했습니다. 목회 현장은 목회의 경험이 없는 제 삼자가 볼 때 너무나 평이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또 극단의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혹자들은 이렇게 말하는 무례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목회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나 물론 저의 철저한 개인적 경험의 판단이라는 취약점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목회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30년,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을 품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성도들이 당한 예기치 않은 고난을 보면서 그들을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때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식 때문에 거친 항의를 주군에게 퍼붓기도 했습니다. 목사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억울함에 내장이 터질 것 같은 비수를 수없이 심장에 박았지만, 참음으로 인내한 고비들은 책으로 출간할 만큼 많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께는 너무나 죄송하고 송구스럽지만 목사 로브(robe)를 벗고 그냥 목회현장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나를 보면 이 치열한 현장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은 목회 말고는 입에 풀칠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라는 상황의 탓도 아닙니다. 목회 현장이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곳이기 때문은 더 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치열한 목회 현장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나의 현장에서 고통과 아픔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항상 늘 여전히 나에게 찾아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현재적 성육신의 은혜 때문입니다. 내가 언제나 너의 곁에 있다는 주님의 이 은혜, 한 가지가 현재까지 필자로 하여금 철저한 주님의 도구로 살게 한 이유입니다. 더불어 이 은혜가 오늘도제가 노래할 이유입니다. 글을 마감하며 나누고 싶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 노래할 이유이자은혜가 필자만의 것이 아니라 독자들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현재적으로 성육신해 함께 계셔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을 노래하는 은혜가 중단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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