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길(신명기 29:1~9)

  • 입력 2017.10.19 16:4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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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석 목사(강남중앙교회)

‘기적’이라고 하는 것,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줍니까? “누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느냐?” 수많은 무리들 속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나무라신 것이 아니라 혈루병 앓던 그 여인을 찾으신 겁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서 가급적이면 알려지지 않고 단지 병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옷자락을 붙잡았던 여인, 그저 죄인처럼 있는 그 여인에게 주님은 마치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눈을 맞추고 마음을 열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그 여인의 삶이 어땠을까? 여전히 그렇게 대단하거나 활기차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여인은 조용히, 확신을 가지고 얘기했을 겁니다. “그분이야말로 그리스도다. 메시아다.”혈루병을 앓던 여인처럼, 간음한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군중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단 둘이 남아서 주님은 오직 그 여인에게만 집중해서 대화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이제는 가서 편안하게, 죄 짓지 말고 잘 살아라.” 피할 수밖에 없는 어두운 과거를 안고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시간. 그런데 사람들이 랍비라고,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분은 정죄할 만한 모든 힘을 가지고서도 자신에게 눈을 맞추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위협하고 협박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여인은 얘기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 그분은 그리스도다. 설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지라도 나에게 그분은 메시아다.” 아무도 찾지 않는 새벽에 몰약을 안고 그 무덤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물 위를 걷는 주님을 보고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데 밤에 갑자기 풍랑이 일었고 공포가 그들을 뒤덮었습니다.

그 중에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주님, 저도 한번 오라고 해 주십시오.” 베드로는 걷다가 파도를 보고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물에 빠졌지만,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무엇이 베드로에게 그렇게 말하게 했을까? 기적의 구경꾼이 되면 단지 더 큰 자극을 원할 뿐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기적의 구경꾼’이 아니라 ‘기적의대상’이 되는 겁니다. 내 안의 바다가 갈라지고 내 안의성이 무너지고 내가 기적의 대상이 될 때 우리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빠지더라도, 그래도 시도하고 도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 베드로의 가슴은 그렇게 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형통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왜 성경은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의 많은 실패를 당당하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게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삼진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홈런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시편 23편을 이해하고, 한 번도 물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주님의 위대함을 알겠습니까? 형통한 길, 그것은 실패하지 않고 하는 일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착착 잘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계속해서 일어나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내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전하고 시도하면서 성장하고 강해집니다. 우리는 계속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밤 사경에 사망의 골짜기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날 겁니다. 그렇게 하늘의 군대가 되어서, 모든 형통의 길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하늘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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