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목마름

기사입력 2017.11.0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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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jpg
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신학교를 졸업하고 만나는 동기모임이 하나 있다. 제법 오랜기간 만났다. 지난 몇 달 전에 그동안 잘 모이지 못했던 동기목사가 근무하는 장소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를 초대한 동기목사가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데,‘아니 저런 일이 있었는가?’ 싶을 만큼 힘든 과정이 있었다. 심지어 너무 힘이 들어 순간 못된 생각까지 했었노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스쳐가는 생각은, ‘아 우리는 친구가 진정 맞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날 함께 모였던 다른 동기목사들도 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그때 지기, 친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모 학자가 행복론 강의를 하는데 행복은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관계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사람과의 사이에서 행복을 느끼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는 것은 가족이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 중 하나가 친구, 지기이다. 그래서 될 수만 있다면 많은 친구, 지기를 만들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보통 학연을 통한 친구, 지기 만들기가 많다. 그리고는 동호회 등이 있다. 요즘은 사이버 친구, 지기인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등의 친구 맺기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친구를 사귀고 지기를 만들어도 어쩌면 나의어려움과 힘든 마음을 누구하나 들어줄 사람이 없거나, 관계는 맺고 있는데 상대방의 속마음을 모른 채 그냥 친구로 지나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런 고민은 동서고금 어디서나 있었던 것 같다. 옛 선비들의 글을 읽다가 친구, 지기에 배고픔이 있는 선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 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사이에다 이를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이 글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글이다.(『미쳐야 미친다』인용) 친구, 지기 한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한 것은 없으리라. 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시(詩) 한 수를 읽었다. “慨然起別想/개연히 한 생각 일으켜. 四海結知己/사해에서 널리 지기를 맺고 싶네. 如得契心人/만약 마음 맞는 사람을 얻게 된다면. 可以爲一死/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겠네.日下多名士/하늘 아래엔 명사가 많다 하니. 艶羨不自已/부럽기 그지없어라.”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것은 지기의 소중함이다. 이 험한 세상 한평생 살아가는데 마음 터놓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작은 행복감을 맛보면서 인생의 길을 함께 웃고 울고 걸어갈 길벗이 필요하다. 책 제목 중 ‘행운의 절반 친구’라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친구, 지기란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행복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가 됨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친구, 지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계는 많이 맺고 있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많은 모임이 있고, 지내고 있지만 어쩌면 이덕무가 말하는 ‘만약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같은 친구, 지기는 한사람도 만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 방악(方岳)(1199~1262)의 시(詩)에서도 “可與語人無二三/말이 통하는 사람도 두셋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보면 지기를 얻기란 쉽지 않는 것 같다.가끔 불현 듯 생각이 나는 시(詩)를 쓰는 목사가 있다. 그가 어느 날 카톡에 보내온 글이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가을이 깊어간다. 오색단풍이 만발한다. 깊어가는 가을처럼 인생의 사색을 많이 하는 때, 친구, 지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예수와 함께 행복을 가져다주는 친구, 지기가 있다면 인생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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