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교과서(69)

제 4 편 둘째 기둥 세우기(예수 2차 오심)
기사입력 2017.11.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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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기 목사
[프로필]
◈ 한동교회 





제 1 부 (파루시아. 재림의 나팔 준비)

 

“일곱 천사가 부는 나팔로 그리스도의 2차 강림,(파루시아)가 성취되는 날이다.”

 

그렇다면 주님 승천하신 후 지금까지 2000년 간 교회는 주님을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기쁜 소식이 나팔 소리이다. 우리 전 세계 모든 교회는 이 나팔 소리를 기다렸으니 나팔 소리를 기뻐함이 당연하다. 교회와 성도들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오신다는데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뻐할 수 없는 자는 유황불에 들어가는 사탄의 집단뿐이다. 그들의 권세는 끝나고 유황불 속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교회와 성도들은 기뻐하지 아니하는가? 그렇게 사모하며 기다리던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외치는 나팔소리를 왜 기뻐하

지 아니하는가? 주의 신부들이라면 신랑 되신 왕자께서 오신다는 외침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려 나오라”(마25:6)라는 신호, 나팔 소리를 왜 기뻐하지 아니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까지의 해석들이 ‘일곱 천사의 일곱 나팔은 일곱 재앙이다.’라는 오해를 심었기에‘일곱 나팔 불기가 그 나팔이라고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 불기가 그 나팔이라고 필자의 지론이 믿기지 않기 때문 일거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일곱 나팔 불기가 재앙이나 진노라고 해석한 자들은 반가운 소식을 불행한 소식으로 잘못 전달해준 배달사고자들이다. 그들은 기쁜 소식 하나님의 말씀을 [일곱나팔 재앙]이라고 명명하며 진노와 심판을 퍼붓는 하나님의 재앙의 경고라고만 교회와 성도들을 오해하게 하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팔 불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 너무도 두려운 사건들인데, 그 사건들의 시작을 알리는 그 나팔을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불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으로 추측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하나님의 일곱 천사가 부는 일곱 나팔은 주님 오시기를 갈망하고 기다리는 주의 백성들에게 경고가 아니라 약속한 그리스도의 2차 파루시아(강림)를 이루신다는 복음이요. 내가 속히 가리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는 위로의 나팔이라고 믿는다.

 

 

제 8 장 1~6절. 새 하늘 새 땅 준비하러 간 메시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 3)

 

이 말씀은 주께서 승천하시기 전 자기의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약속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은 탄생하였다. 이 말씀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중에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는 모습까지 보여 주셨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살아나신 주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고, 그 후부터‘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 분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는 공식 여정의 시간들 속에서 탄생한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처를 예비하시는 시간과 오실 근거 즉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타이밍을 계산하고 계시고, 약속을 기다리는 제자들에게는 복음 전파의 환경과 주변 정세나 핍박이 그리스도의 약속 시간이 지연되는 감을 느끼게 하고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보낸 소식이 요한계시록이다. 그리고 그 소식의 메시지 첫 번 째 계시(인봉한 두루마리의 봉인을 다 제거하고 난 후 첫번째)가 일곱 천사가 부는 일곱 나팔이다. 이런 요한계시록의 현실은 먼 외국에 사업차 떠난 정혼한 신랑이 보낸 사랑의 편지(Love Letter)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그가 준 선물만 보아도 눈물이 쏟아지고 그가 베푼 사랑의 약속들을 묵상하면 기쁨이 솟아나는 신부가 하루, 이틀… 몇 년째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자. 사랑에 취해 수십 년을 기다리는 사이 많은 남자들이 유혹을 하고, 유혹하다가 협박을 받고, 협박하다가 폭력으로 순결을 빼앗으려고 할 때 버티고 버티다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환경에 처해 있을 때에 먼 외국에 간 정혼한 남편으로부터 온 소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랑해요. 빨리 못가서 미안해요. 날 믿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여기 일이 다 잘되어 가요. 속히 갈게요.’ 하는 말을 듣길 원하겠는가? 아니면 ‘내가 지체하고 있다고 너 다른 남자와 놀아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내가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 다 뒤엎어 버릴것이다. 네가 한 짓을 회개하지 아니한다면 내가 너를 죽여 버릴 것이다.’라는 소식을 여인이 들었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고, 힘이 빠지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기다리는 신부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하실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곱 천사 나팔 불기를 조명하려 한다. 이럴 때 왜? 하나님은 나팔을 불라고 명령하시는가? 나팔을 부르라고 하신 하나님은 어떤 의도로 부르라고 하셨을까? 하는 기본에 충실하여 일곱 천사 나팔 불기에 대하여 다시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하나님은 목적 없이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나팔을 부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님의 그 목적 때문에 이익집단과 피해 집단이 있을 것이다. 피해 집단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듣기 싫어 결사항쟁하며 방해 책동할 것이다. 그 집단들이 무엇일까? 그들은 왜 반대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반대를 하는가? 그 반대자는 어떻게 저지 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일곱 나팔 불기 계시의 말씀을 자세히 주목해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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