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중앙교회 40주년 김연희 담임목사 특별대담

  • 입력 2017.11.16 14:42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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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목회 30년, 사랑 목회 10년 “내게 다가온 보혈의 사랑, 교인들에게 흘려보내”

소문난 바보목사 “예수님 사랑하지 않고는 목회할 수 없어”

“훌륭한 목사 원치 않아. 교인과 함께하는 목사,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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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중앙교회가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소회가 어떠신지요?

 

-신생중앙교회를 설립해 놓고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었어요. 너무 갈급한 마음에 병원에서 퇴원한 뒤 목발 짚은 그 몸 그대로 40일 새벽 작정기도에 돌입했어요. 어떻게 하면 주님 뜻대로 목회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응답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 환상을 봤고, ‘내가 널 사랑한 것 같이 너도 사랑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당시엔 이 말씀을 너무 단순하게 받았던 것 같아요. 누구 못지않은 목회 열정으로 뛰었고, 환자들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등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죠.

그렇게 30년을 목회하고 나니 뭐랄까. 철이 좀 들었다고 할까요. 10년 전부터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 예수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고통과 야유, 침 뱉음, 매 맞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심… 주님의 그 보혈의 사랑을 교인들에게 주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왔어요. 그걸 생각하다보면 설교하다 울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은 그 사랑을 많이 느끼고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가운데 능력도 나타나는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 교회 설립해서 성역 40년을 맞고, 성도가 몇 천 명이나 된다는 것만 해도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요즘 나도 모르게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찬양을 자주 부르게 됩니다. 그럴 수 없겠지만, 바울의 그림자라도 따라 가보자는 심정으로 주의 영광을 위해 살다 죽고싶은 마음입니다.

 

한 교회를 설립해 40년을 섬기며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일궜다는 것이 정말 보람되실 것 같은데요. 함께해온 이들에 대해 각별한 마음이실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믿음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나를 전도하셨던 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40년을 함께했어요. 그 분의 아들이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아요. 그런데 아들 옷을 사줄 때 나도 사주시고, 보약을 지으면 꼭 내 것까지 같이 지으셨어요. 내가 예수 믿기 전의 모습까지도 다 아는 분들이 오늘까지도 함께하고 계신다는 게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지요.

내 마음에는 ‘믿음의 형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20년 동안 전도사로 사역하시다 지금은 은퇴하셨어요. 옛날 우리가 너무 어려웠던 시절에 그 분들이 세를 살았는데, 안방은 그분이 3남매와 함께 쓰고, 작은방은 우리 부부가 살도록 내어주셨어요.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누가 그렇게 하겠나 싶어요.

장로님들은 또 어떻고요. 수십 년을 함께하니 다들 형 같고 동생 같은 분들이세요. 내가 목회방침을 세우면 철저히 신뢰하며 교인들에 앞장서서 동역해주시지요.

우리 교회 설립할 때부터 40년 동안 출석한 교인이 20여명이나 됩니다. 30년을 함께한 교인은 백여명이 훌쩍 넘어요. 이 분들이 어찌나 잘 따라와 주시는지 하나님이 이런 분들을 안 붙여주셨으면 나는 목회 못했습니다.

 

김 목사님의 목회를 이야기할 때 사모님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사모님의 내조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모태신앙에 막내딸로 곱게 자라난 사람이 나를 만나서 힘들었지요. 목회는 드러나는 심방보다 숨겨진 심방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신학교에서 상담학을 공부했는데, 한 번 전화를 받으면 두 세 시간을 상담에 매달립니다. 교인들의 고민과 고충을 상담해주는 전문가에요. 사람을 낚기 위해 나는 투망을 던지면, 아내는 뒷문을 잘 막는 것 같아요. 내가 복음을 심었다면 사모가 물을 잘 준 거지요. 그 뿐입니까. 내가 원래 예수도 안 믿었던 데다가 운동을 했던 사람이라 성격도 날카로웠어요. 그런 나를 부드럽게 다듬어주고, 걸음걸이 하나까지 다 고쳐주며 조련을 아주 잘했죠. 부인 자랑하면 바보라는데, 나는 원래 바보 목사니까.(허허) 이런 이야기 처음 하네요.

사모가 나에게 항상 하던 말이 있어요. 교인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라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헌금 강조, 물질 강조를 못했어요. 교인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인데 그들 스스로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드려야 한다는 거죠.

또 한 번은 교인들이 농담조로 ‘목사님이 잘 생기셔서 밖으로 돌아다니면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우리 집에서야 내 남편이고 애들 아빠지, 밖에 나가서는 교인들의 목사다. 그래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우연히 들었어요. 아내의 그 말이 마음 깊이 남아 있어요. 고맙죠.

이런게 우리 아내의 내조입니다. 장로들이 말하길 ‘목사님도 목회 잘 하시지만 70%는 사모님이 하셨다’고 말할 정도에요. 항상 교인 편에 서 있으니 내가 농담으로 ‘야당 총재’라고 할 정도라니까요.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어떻게 하면 목사님께 더 드릴까 고민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안 받으신다면서요?

 

-재정과 관련해 우리 교회가 흔들렸던 때가 한 번 있습니다. 교회에 다른 복음이 들어와서 ‘목사가 물질을 다 쓴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내가 말렸는데도 그때 장로들이 장부 다 비춰놓고 ‘우리 목사님은 지금까지 헌금 10원도 손 안댔다’고 해명을 했죠. 교인들이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 사례비 중 55%가 다시 교회에 헌금되고 있었던 거에요. 사모가 모든 돈 관리를 하니 나도 몰랐었죠. 이렇게 되니 시험이 전화위복이 되어버렸어요.

40년 동안 사례비를 받으면 항상 줄이라고 했지 많이 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나는 적게 주고, 부교역자들 많이 주라고 하죠. 근데 장로님들이 우리 집사람 살림하는 거 보면 빤히 아니까 몰래 주고, 뒤로 줘버려요. 우리에게 좀 넉넉하게 주면 와이프가 조금만 받겠다고 하고 재정부로 환원시켜버립니다.

지금 타는 차도 안 바꾼다는데 권사님 한 분이 무작정 교회 앞에 갖다놔서 10년 넘게 타고 있어요. 차가 오래되니 고장도 나고 하니까 내가 안 된다는데도 장로님들이 또 차를 계약했다고 오늘 전화가 왔어요.

청년 때부터 지금까지 제 주위엔 그렇게 필요한 걸 채워주셨던 무명의 귀한 분들이 참 많았어요. 내가 볼 책을 사다 주시고, 아무도 모르게 책을 출간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주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돌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을 교인들에게 흘려보내야죠. 내가 담고 있으면 되나요.

 

그래서인지 지역사회를 위한 섬김도 꾸준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개척교회로 굉장히 어려울 때부터 지역사회와 함께하기 위해 성탄절이 되면 환경미화원분들 옷을 다 사서 입혀드렸어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도 성탄이 되면 월계동과 석관동, 장위동 3개 동에 아주 어려운 분들에게 쌀 나누기, 연탄 나누기, 김장 나누기를 하고 있어요. 파출소, 지구대, 주민센터, 소방서에 우리 교인들이 나가서 식사 대접하고 꾸준히 섬겨왔죠.

경로잔치도 두 달에 한 번씩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 다 초청해 한방치료도 하고 머리도 손질해 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효도관광도 보내드리고,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부침개 전도도 하고 있어요.

이렇게 몇십년 해오다가 특별히 올해엔 40주년을 맞아 인근 석관중학교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축제를 열었어요. 같은 기간에 우리 동네에서 축제를 하는 곳이 3군데나 있어서 안 믿는 사람들은 안 오겠다 싶었는데, 이게 웬걸. 운동장이 꽉 차게 온 거에요. 국회의원, 구청장, 지역 유지들을 비롯해 15개 위원회에서 대표들이 다 왔어요. 너무 감사했죠. 1부는 일반 행사고, 2부는 교회 행사니까 1부 마치면 사람들이 다 갈 줄 알았는데 2부 다 끝날 때까지도 모든 사람들이 함께했어요. 행사가 너무 은혜롭게 마쳐져서 앞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지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농어촌교사 초청 강습회를 30년 넘게 했어요. 그런데 이제 농어촌에 교사가 없어요. 그래서 청년들이 농어촌교회를 찾아가서 강습회를 하고 있죠. 교사가 없으니 목사들을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에 8년 전부터 ‘바이블이 열린다’ 성경연구소를 만들어서 농어촌 개척교회 목사님들 초청해서 세미나로 섬기고 있습니다.

작년엔 네팔에 가서 지교회 2개 세웠고, 금년엔 필리핀에 가서 어려운 교회들을 도왔어요. 내년엔 표어를 ‘열방에 주의 영광을 선포하자’로 정하고 해외로 섬김을 더 확장해 나갈 생각입니다.

 

40주년 임직예배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요?

 

-‘사명자여 일어나라!’라고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장로들부터 시작해서 권사, 부장 및 교사, 집사 순으로 매주 오후예배 끝나고 사명자 훈련을 하는 거죠. 임직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제직들이 다 참여하는 거에요. 첫날 장로님들이 먼저 나서니 이하 다른 교인들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거지요. 사명자에 대해 말씀의 초점을 맞추고 원고 준비 없이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장로님들과 함께 세족식과 성찬식을 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편지도 쓰고, 장래 계획도 씁니다. 그리고 나서 다 같이 일어나서 사명가를 부르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주면서 사랑한다고 안아주는데 나이 많은 장로들이 목사 가슴을 붙잡고 웁니다. 99.9%가 다 울어요. 직분자들 마치면 평신도들과도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이번 40주년 기념예배를 앞두고 작정기도도 선포했어요. 날짜 맞춰서 계획한 게 아니고 무작정 선포했는데 73일 작정기도가 됐네요. 우리 교회는 1년에 40일 작정기도를 2~3번은 합니다. 그때마다 암환자, 중환자들이 고침을 받고 문제들이 해결되니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뭣하면 강단에 기도하러 간다’면서 기도하는 목사라고 인정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성역 40주년에 새롭게 다지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목회를 해보니 설교 잘하는 것도 좋고 능력도 좋지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겁니다. 바울이 ‘너를 그리스도인의 형상으로 만드느라 해산의 고통을 한다’고 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자신을 떠난 베드로를 찾아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다시 손을 내미셨던 것처럼, 나도 그 사랑을 하고자 굉장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목회를 할 수 없어요.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인들을 사랑하고 싶어요. 이거 말로는 쉬운데 무지무지 힘든 겁니다. 영과 육의 싸움이에요. 육이 이기면 못해요. 사랑이라는 말은 쉬운데 실천하려면 ‘아이고’ 소리 납니다. 나도 하려고 애만 쓰고 있는 거지, 실천은 지금도 못하고 있어요.

나는 훌륭한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교인과 함께하는 목회, 그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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