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성지순례(11)

  • 입력 2017.12.14 10:0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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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수 목사
▣ 영월주님의교회 
▣ 전 터키 선교사

사도 바울 일행은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수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지중해 해안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을 거쳐 소아시아 해안에 위치한 밤빌리아 지역인 버가를 지나고, 소아시아 내륙 깊숙한 갈라디아 지역을 다니며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기쁜 소식을 증거 하였다. 총 길이로는 모두 약2300km나 되고 도시의 수는 12개나 되는 긴 장정이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 일행이 1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그들이 행한 선교전략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몇 가지 알 수 있다. 첫째로, 그들은 당시 전 세계를 통치하던 로마 제국의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신속하게 이동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 중심의 선교 활동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복음전도를 위한 기민함과 다수와 소통을 중요시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다니던 소아시아의 선교적인 거점 도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이주하여 정착하는 대도시와 교통의 요지임을 실감하게 한다.

둘째로, 그들은 유대인이 모이는 회당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따라서 사도 바울 일행이 선교 여행 중 어느 지역을 가든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는 관습은 이후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선교사역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울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구속계획에 대한 이해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롬 1:16), 또한 동일 문화권에 속해 비교적 복음 전도하기 쉬운 유대인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여 점차적으로 그 지경을 넓혀가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그가 전도하기 위해 거점으로 사용한 유대인의 회당은 정기적인 모임을 하기 위해 마련된 건물로써, 그들이 이미 구약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들이었기에 구약을 이용하여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에 매우 적절한 장소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들을 통하여 이방선교의 접촉점(point of contact)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복음전도에 매우 유용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로, 바울 일행은 가는 곳마다 가정 교회를 세우고 이곳을 중심으로 제자를 양육하였다. 따라서 안디옥교회의 설립 과정에서부터(행12:19~26), 선교사 파송(13:1~4), 그리고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14:22~28) 모교회인 안디옥교회에 돌아와 선교보고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교회에 일군들을 세우고, 또한 교회 형제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음을 누가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행14:22~26)

넷째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는 성육신 선교(ContextualizedIncarnational Mission)를 하였다. 이것은 이미 세상에 천국의 비밀을 전해주시기 위해오신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께서 낮고 천한 모습으로 베들레헴의 가난한 곳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전서 9장에서 교회 신

자들에게 복음 전도를 위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종의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9:19)

필자는 선교사로서 30년 전에 처음 선교지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우리와 함께 동역한선임 선교사들의 삶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소위 말해서 문명의 혜택을 잘 받은 선진국에서 편안한 삶을 내려놓고 예수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가난한 달동네에서 함께 현지인들을 섬겼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생활수준과 전혀 다르지 않게 스스로 낮아져 함께 불편함을 나누며 그들을 형제처럼 사랑하고, 그리고 후임 선교사들을 섬기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물질의 풍요가 복음 전도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에 혹장애물이 되지는 않는 가 가끔씩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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