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재주가 있다면

  • 입력 2017.12.14 12:00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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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jpg
 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올해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한지도 30여년이 지났다. 신학교를 다닐 때나 목회를 시작하는 초기 때나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못 배운 자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자연 그들의 고단한 삶이 시야에 들어와 마음 한 곳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목사안수를 받았다. 안수를 받고 열흘 남짓 후(1989.3.29.) 원고지 21장에 육필로 글을 하나 남긴 것이 있다. 서랍 깊은 곳에 묻어두었기에 어쩌다가 한번 꺼내서 읽을 때가 있다. 이번에도 글감을 찾다가 생각이 나서꺼내 읽어본다. 여기에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글재주가 있다면」 내가 만일 글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포근하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 것인데,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같은 상상의 나래는 먼 남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노력이라는 단어가 가까운 친구처럼 한번 해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부채질 한다.

내 주변의 일어나는 일들을 사건화하고 인물에 감정을 묘사해 스릴과 갈등이 교차하는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싶다. 우리 주변의 가진 자, 많이 아는 자 보다는, 못 가진 것 때문에 깊은 사연이 많고 못 배운 것 때문에 구조의 모순 속에서도 삶의 뿌리를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한 서린 인생을 그래도 살아가는 고달픈 주변의 얼굴을 담아보고 싶다. 화가가 될 수 있다면 그림 폭에 빈(空)자들의 삶을 진솔함으로, 그들의 그대로의 비쳐진 모습들-(일그러진 모습 깔끔하지 못하지만 궂은 상념 속에서도 한 가닥의 희망 때문에 인고하는 숭고하리만큼 진솔한 그늘진 얼굴 모습) 만약 극을 하는 쟁이라고 한다면 그들의삶의 한을 리얼하게 전달하여 인생 고행의 단면을 보여 주고싶다. -중략-

목사가 되었다. 주변의 사람은 허기진 배 움켜쥐고 인고의 주어진 삶을 과묵하다 못해 성난 얼굴로 포효하는 범처럼 자기 일에 매달려 살아간다. 그들이 내가 관심의대상이요, 아픔과 기쁨을 나누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그들에게 줄 것인가? 이미 소유라고 하는 개념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와 같은데-그래서 마음 아프다. 그들의 가난, 설움, 북받쳐 오르는 한은 나의 동맥에 연결된 듯, 함께오열과 울분과 분노가 되고 있다. 연민의 정이 넘쳐 아픔이 됐다. 무엇인가 나는 – 중략-”

세월은 30여년이 흘렀지만 내가 목회하는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간다. 소위 “사”자가 붙은 사람은 없다. 정신노동자 보다는 몸으로 땀 흘려 열심히 일해야 근근이 먹고사는 육체노동자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들의 고단한 삶을 알고 있기에, 한 권사님이 70이 훌쩍 넘었는데도 무릎이 아파 저는 다리로 아파트 청소를 해서 받은 월급 중 십일조 몇 만원을 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넘어 신앙에 존경심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어떤 여 집사님은 새벽예배 끝나는 시간에 벌써 일터에 청소하러 출근한다. 어느 집사님은 교회생활을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이사 집 센터에 다니면서 하루 힘들게 벌어 교회에 십일조 드리고 과분하리만큼 목사를 대접하는 모습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의 일상과 고단한 삶을 볼 때마다 목사의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여 집사님이 우리교회에 나온 지도 몇 년이 흘렀다. 결혼해서 한국에 살다가 미국으로 부푼 꿈을 안고 떠났다. 그러나 미국생활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고생고생 하다가 10여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 오듯 들어왔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교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우리교회이다. 다시 돌아온 한국생활이란 넉넉하지 못하고 궁색한 삶이었다. 그동안 줄곧 보아온 그 집사님의 삶은 참 고단한 삶이었다. 한국에 다시 오면서 시작한 것은 조그만 돈가스 가게였다. 경기가 좋지 않자 가게 문을 닫고 지금은 하루에 오전 한 타임, 저녁 한 타임 식당에 아르바이트로 나가 일을 한다. 전문직이 아닌 여 집사님의 일이란 식당 홀 서빙, 설거지 등이다. 그런데도 내색하나 없이 묵묵히 매주 토요일이면 커다란 예배당 청소 등 교회의 궂은일은 빠짐없이 한다. 그런 집사님이니, 목사의 마음 한곳에는 “하나님 부디 저 집사님의 형편을 보시고 복주시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여유로운 가정을 이루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 그 집사님이 어느 토요일에 갑자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당신이 지금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곳이 맛있는 갈비탕집인데, 목사님 사모님, 전도사님 함께 오셔서 식사하라는 것이다.

아내도 그 집사님의 형편을 알기에 “아닙니다. 말씀만 들어도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몇 차례 거절을 하였는데도 너무 완강하게 요청하여 나와 아내가 같이 식당에 갔다. 참 맛있게 하는 갈비탕 집이었다. 잘 먹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미 계산을 다 하시고 같이 오지 못한 전도사 몫 갈비탕 하나를 포장하고, 또 집으로 가져가라고 하면서 포장을 해 주시는 것이다. 하루 몇 시간 일해야 돈 몇 만원인데 일당을 다 쓴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내와 함께 너무 마음이 아프다. 목사가 누구이기에 저렇게 섬기려 하는가? 과연 그것에 보답하는 목회를 하고 있는가? 질문을 한다. 30년 넘게 목회를 하였지만, 나는 아직도 작은 교회에서목회를 한다. 승합차만 줄곧 몰고 다닌다. 전에 몰던 차는 10년 운행하다가 지금 차로 바꾸고 스타렉스를 9년째 몰고 다닌다. 때로는 다른 사람처럼 멋 나게 승용차도 타고 싶고, 아내에게 기분 좋게 용돈도 좀 주고 싶은데, 현실은 단돈 몇 만원에 벌벌 떠는 못난 목사이다. 그런 나에게 가장 마음속 무겁게 자리 잡은 것은 주변의 가난한 성도들의 일그러진 모습들이다. 그때마다 ‘하나님, 승합차도 감사합니다’라고 외마디친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나와 같은 목사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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