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임의 영성

  • 입력 2017.12.21 11:1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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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조 목사.jpg
 김대조 목사(주님기쁨의교회) 

“목사님, 가끔씩 ‘전도사’라는 것을 벗어버리고 좀 자유롭게 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꼭 이렇게 해야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요~”

바울의 ‘매임을 당하였노라’는 큐티 본문을 같이 묵상하고 나누는 자리인데 속으로 ‘앗’ 하며 살짝 당황했다. 그 옆에 있는 다른 교역자에게 물었다. “재능도 탁월한 A 목사님은 어때요?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는 고개를 들며 체념한 듯이 말했다. “저요, 저는 이미 목사안수를 받았는걸요. 이젠 어쩔수 없잖아요. 이 길을 가야지요” 그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아, 바로 그거네요. 전도사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려면 목사 안수를 받으면 되겠네요.” 했더니 “제가요, 목사안수를요?”깜짝 놀라는 말에 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어디로 보나 스펙도 되고, 굳이 사역을 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많은 이들이 사역자가 되어 이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전도사님, 능력이 많아서 그래요. 주의 일 말고도 할 수 있는 능력 말이지요. 그것이 없어야 그런 생각을 안 할 텐데요.” 좋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기에 아이들만 가르쳐도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넉넉하지 못한 주의 길을 가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그러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눅9:62) 하는 말씀도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부터 교회 마당에서 자란 ‘교회아이’였지만 설마목사가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유 중 하나는 시골 전도사님(당시 시골교회는 목사님이 오실 여건이 안 되는 열악한 미자립교회였다.)

이 생활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교회에서 힘겹게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목회를 하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좋은 장로가 되어 열심히 목사님을 돕는 사람이 되길 다짐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줄이야. 난 안다. 하나님께 ‘매임’의 길을 가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부르심’ 앞에 순종하는 삶의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주께서 주신 동산에 /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 / 내 모든 삶을 드리리 /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 땅 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 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 주님 오실 길 예비하라 / 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내가 이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는 바울의 고백이 다시마음에 깊이 박힌다. 그 ‘매임’이 얼마나 귀한지, 그 눈물이, 헌신이, 순종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주님 앞에서 아름다운 값진 진주가 되어 빛날 그 날을 보는 것 같다. 오늘도 너무도 부족한 사람을 세상이 아닌 ‘십자가 복음에 매인’ 사역자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주님과 동역하는 이 길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영광스러운지 감격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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