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입력 2017.12.28 12:1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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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시간은 잡을 수 없어, 어김없이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각각 다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라는 그림을 나름대로 그린다. 그런 그림이때로는 거창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무엇인가 한번 해 낼 것 같은 큰 포부도 있다. 그러나 십 수 년을 지나면서 어느 정도 세월의 연륜이 묻어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커다랗고 요란한 포부보다 그날그날을 주어진 여건 가운데 성실하고 진솔하게 삶을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살아온 햇수도 제법 되다보니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즈음에 마음속에 스쳐가는 생각은 ‘올 해는 어떻게 살지?’ 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글감을 찾다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다산초당에 거할 때 제자에게 준 글이 눈에 들어왔다. 글 제목이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전문을 옮겨본다. “산에 살며 일이 없어 사물의 이치를 고요히 살펴보니, 이익을 좇아 바삐 오가고 노심초사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누에가 나올 때면 뽕잎이 먼저 돋고 제비 새끼가 알에서 나오면 날벌레들이 들판에 가득하다.

아기가 갓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 젖이 나온다.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그 먹을 것도 함께 주는 법이다. 어째서 깊이 근심하고 지나치게 염려하면서 정신없이 바삐 돌아다니며 혹 기회를 놓치지나 않을까 근심한단 말인가? 옷은 몸을 가리면 그만이다. 음식은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 봄에는 보리가 나올 때까지‘올메’(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대용으로 먹는 쌀)가 있고, 여름에는 벼 옆에서 자라나는 ‘피’(곡식의 한 가지)를 먹으면 된다.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내년을 위해 금년에 일을 도모하지만, 내년에 반드시 살아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아들을 쓰다듬으면서 손자 증손자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만, 자손들은 바보이겠는가? 설사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며 평생 걱정 없이 살다가 죽는다 할지라도, 죽고 나서 사람과 뼈가 모두 썩어 버리고 후세에 남길 글 하나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삶이 있었다 한들 금수와 다를 게 없을 터이다.

세상에 제일 경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한 일’이라고 하고 독서를 하고 이치를 탐구하는 일을 ‘옛날이야기’라고 한다. 맹자는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되고,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 된다’고 했다. 저 사람들은 소인이 되는 걸달게 여긴다.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다산의 마음』 인용. 지금부터 수 백 년 전 다산이 제자에게 준 글이 어느 정도나이가 들고 보니, 한편 공감이 되는 글이다. 계획만 거창하고 요란하다가 흐지부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걸어가야 할 ‘올 해’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맑은 정신 함양에 힘쓰며, 독서하고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삶이라면 무얼 더 바랄 것인가? 여기다가 다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새해 첫날’에 나오는 일부를 첨언 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싶다. “행동과 말과 안색을 바르게 하는 것이 학문의 첫 출발점이다. 진실로 이 세 가지에 힘을 쏟을 수 없다면, 아무리 재주가 탁월하고 지식이 출중해도 끝내 어디에도 발붙이고 서 있을 수 없다.

그 폐단으로 인해 어긋난 말을 하고, 거칠게 행동하고, 도적이 되고, 큰 잘못을 저지르고, 이단과 잡술에 빠져 멈출 줄을 모르게 될 것이다. 나는 서재에 ‘삼사’(三斯), 즉‘이 셋’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이 셋’이란 행동은 난폭함과 거만함을 멀리 할 것, 말은 비루함과 어긋남을 멀리 할 것, 안색은 미덥게 할 것 이 세 가지다. 너희들의 인품이 나아지길 바라며 ‘삼사재’(三斯齋)라는 이름을 너희에게 준다. 너희들은 이것을 서재의 이름으로 삼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다음에 인편에 부쳐 다오” 『다산의 마음』 인용. 지난 묵은 한해를 보내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와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 때 잘나가던 사람도 한참 시간이 지내고 보니 잘 나가던 사람이 아니었구나’ 유명세를 탄 사람도 ‘아 저럴 수가?’ ‘역시 사람은 두고 보아야 알아’. 새롭게 맞이하는 올 해는 걸어가는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내면의 성숙을 쌓아 갔으면 한다. ‘삼사’(三斯), 즉 ‘이셋’을 마음의 서재로 삼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잘 헤쳐 나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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