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음

  • 입력 2018.01.18 10:4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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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jpg
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언젠가 서점에서 책을 하나 사서 읽었다. 그 중에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어느 목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미국에서대학을 나오고 미국 잡화계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소명을 받고 모든 것을 처분하고 보따리 하나 들고 귀국해 신학생이 되었다. 미국시민권도 포기했다. 그것이 처음 마음이었다. 이제는 10년쯤 지나 잘 알려진 교회의 잘 나가는 설교가가 되었다. 이곳저곳 초청을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런 그가 어느 자리에서 고백을 했다. “곧 책이 한 권 나옵니다.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출판사라주위 사람들은 벌써 기대를 합니다. 뜰 것이라나요? 문제는 제 마음 한구석에도 그런 마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 명예욕, 곧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또 하나의 욕심이 있습니다. 신학생 시절에 욕했던 못난 선배들을 그대로 좇아가는 나를 봅니다. 아마 지금 내가 욕하는 이들과 꼭 같은 환경이 된다면 나도 그들과 다름없이 행동할 것입니다. 

환경이 다르고 아직 그 시간에 이르지 않았을 뿐 초심을 잃어버린 나는 그들보다 나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대개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들어갈 때, 아니면 목사가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안수를 받을 때 누구나 동일하게 각오를 한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기 위해서 모두를 버리겠다고 한다. 버리겠다고 하는 것 중에 대부분은 물질, 이성, 명예에 대한 욕망이다. 그래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라고 고백을 한다. 그러던 것이 차츰 목회를 하면서 또는 삶을 살아가면서 점점 현실주의자가 된다. 아골 골짝 빈들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유리한 조건을 따진다. 존귀영광 모든 권세는 내가 홀로 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서서히 고개를 내미는 것은 욕심이다.

특히 명예에 대한 욕심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것 같다. 주변의 지인 중에 하나 둘 이름을 날리고 인지도가 올라가고 유명세를 타게 되면 은근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치미는 것이 명예에 대한 욕심이다. 목회자는 세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물질, 이성, 명예이다. 물질과 이성은 모르겠는데 자꾸 눈을 돌리는 것이 명예이다. 슈퍼스타가 되어 보려는 허망 된 꿈이다. 이런 것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을 줄 안다. 정도의 문제이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예수님상은 어떤가? 될 수 있으면 왼손이 한 일은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사셨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이슈삼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군림하는 슈퍼스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를 생각하셨다. 보내신 자인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일은 복음이었다. 복음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소식이요 병든 자에게 치료자요 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위로였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면서 한결같은 원칙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즉 명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선동적이지도 않았고 유명세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하나님만아시면 되지’ 하는 마음 이었다. 이 마음을 기독교 역사상 가장 닮아 보려고 한 시대의 사람들은 3~4세기 때 사막교부들이었다고 역사가들은 본다. 그들에게 영성은 감추는 것이었다. 자신은 감추고, 이름은감추고, 될 수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갔었다. 그 영성이 오늘 날 우리 시대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끔 고개를 내미는 명예욕을 보면서 초심을 찾기란 쉽지 않음을 본다. 예수 믿는 누구에게나 있는 초심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성자이다. 나이가 들고 목회연한이 많아지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시선과 이목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가 힘들다. 이유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성경에 눈을 돌리면 성경은 줄곧 사람에게 눈 돌리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라고 한다.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라고 한다. 하나님이 알아주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알아주지 않으면 왠지 서운하고 힘이 빠지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이 알아주면 마치 내가 대단한 것 같고 고개가 뻣뻣해진다.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거나 ‘하나님이 알아주면 되지’하는 단계의 영성은 내공이 있어야 한다. 그 내공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기독교역사상 많았다. 그들은 한 결 같이 눈을 하나님을 향해 돌렸다. 그래야 명예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런 자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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