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사람(다니엘 3:19~28)

  • 입력 2018.01.25 16:0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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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오늘, 느부갓네살은 분이 가득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신상에 절하면 살려주겠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세 친구가 보여준 신앙, 그 본질은 무엇입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말합니다. “이 문제는 당신과 대화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풀무 속에서도 우리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뒷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습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육신의 생명에 한계 지어진 믿음을 신앙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주시면 믿겠습니다.’ 하는 조건부 신앙을 만들고, ‘언제까지 이런 일이 이루어진다.’ 하는 시한부 신앙을 만듭니다. 그러나 세 친구를 비롯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에 그 신앙의 뿌리를 내립니다.

영원한 약속, 영원한 복음, 영원한 나라, 결국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속성에 맞는 ‘영원’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신앙은 거기에 뿌리내린 영원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풀무 속에서 살아난 것에 주목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아니라 영원히 빛날 세 친구의 영원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이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셔서 우리의 신앙이 영원한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본향을 사모하는 신앙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열심으로 양육하고, 인도하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세상, 멸망 받아야 마땅하지만 거룩한 씨 때문에 내가 이 세상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약속하십니다. “복을 받게 하겠다. 내 축복이 영원하도록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내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영원한 믿음을 너희 안에 주겠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느부갓네살은 맹렬히 타는 풀무 속에서 조금도 상하지 않고 나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고 무슨 말을 합니까? 약속은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려야 하고, 모험해야 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애를 넘어서는 기다림도 있을 수 있고, 연단과 시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또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주실 마음도 있음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말합니다. “네 번째 사람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정녕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뢰하는 자에게 천사를 보냈구나.” 그렇습니다. “예수(우리를 구원하신다)라 이름 하라. 그는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영원한 신앙이 되면 우리만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만평안과 만족과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어둠의 세상 속에서도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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