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그 새로움(1)

  • 입력 2018.02.22 13:4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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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조 목사(주님기쁨의교회) 

‘김 목사, 맨땅에 헤딩하는 거야. 개척을 하기 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 담임 목사님의 마음 담긴 만류였다. 내 나이 43세,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 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길을 나서기에는. 런던에서 오랜 유학 시간을 보내고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되뇌던 기억들. ‘아, 이제 이런 생활은 마지막이겠지. 난 절대 개척은 안할거야~’ 하나님의 은혜로, 담임 전도사로 청빙을 받아 영국 땅을 밟았을 때 맡게 된 교회는 십여 명의 청년들 중심의 교회였다. 갓 결혼한 젊은 부부와 영국인과 결혼한 나이가 좀 되신 여 집사님 가족 그리고 런던대 학생들 몇 명. 그렇게 시작한 런던에서의 첫 담임목회와 유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지나온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런던 외곽 서비턴에 위치한 감리교회의 뒷방, 자그마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우리 집이 있는 윔블던 역 근처의 아담한 교회로 예배의 장소를 옮긴 것은 놀라운 기도의 응답이었다.

마치홍해가 열리는 것 같은 기적이었다. 어느 날 영국친구의 권면으로 ‘켄싱턴 템플’이라는 영국교회 집회를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에 충만한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모습들에 압도되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 교회지.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나님은 그곳에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꿈을 주셨다. ‘행복’이라는 키워드였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모이는 이들이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힘입어 당시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이름도 기도 중에 ‘런던 행복한교회’로 바꾸고 새롭게 시작했다. 유학생들과 함께 한 십 여 년의 ‘런던 행복한교회’는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예수를 만나고, 함께 말씀을 나누며, 그런 가운데서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이 그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한편으로 나 역시 학생 신분으로 학업과 목회를 병행하는 것은 만만치는 않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이 학생들인 성도님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 나도 다른 학생들처럼 논문을 쓰는 학업에만 전념하고 싶은 부담감이 항상 내 안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놓을 수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주 중에는 학교 기숙사에 머물거나 외국 친구의 방에 얹혀살기도 했다. 한 때는 학교 주변의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동양 학생에게 따뜻함을 베푼 영국 할머니 집에 잠자리 신세를 지며 공부한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정말 은혜였다. 그러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와 금요다락방모임과 식사교제, 때로 철야예배, 주일예배와 새 가족모임 등에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 젊은 성도님들과 찬양하고 기도하고 울고 웃으며 삶을 나눈 시간들. 때로 눈물로 예배를 드리며 보낸 숱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조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나라에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옥한흠 목사님 아래서 목회를 잘 배워 개척이 아닌 기존 교회 안에 지친 성도들을 말씀으로 세워 교회를 새롭게 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내게도 개척 교회는 젊은 날, 청춘을 드린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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