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사사기 6:11~18)

  • 입력 2018.03.02 11:0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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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여호와의 사자가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을 만나시기 위해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었던 아비에셀에 속한 오브라라는 지경까지 찾아왔습니다. 왜 찾아오셨을까요? 본문 14절을 보면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심각한 미디안 족속의 핍박 하에 있었던 그래서 땅굴을 파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고통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을 택하셨는데 바로 그 사람이 오브라에 살고 있었던 기드온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기드온을 만나신 하나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는 멘트로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문제는 기드온은 큰 용사가 아니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자였던 요아스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는 지금 미디안의 핍박이 두려워 조그마한 술틀에 들어가 곡식 낱알을 털고 있는 소인배였지 큰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큰 용사라는 호칭을 붙여주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이자 뜻인 미디안의 압박 하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용기백배하는 호칭으로 기드온을 불렀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꺼려하며 트집을 잡았습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세 가지를 기드온이 하나님께 반문하며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①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면 왜 지금 우리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고통에 있는 것입니까? ②옛적 조상들에게 그리 흔하게 나타나던 기적이 오늘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까? ③작금의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까? 그의 반론은 논리 정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기드온의 반론 제기를 어디에서 많이 듣거나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어디서 보고 들으신 것같습니까? 바로 나를 통해서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오늘 그렇게 대들고 있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기드온의 이 문제제기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기드온에게 관철시키십니다. “너를 미디안에게 보낼 터이니 이스라엘을 구원하라”(14절) “네가 가면 반드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네가 한 사람과 싸우는 것처럼 하라 그러면 내가 직접 나서서 싸울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16절) 사정이 이 정도가 되면 기드온이 이제는 알아들을 만도 한데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시소게임을 벌입니다.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당신에게로 올 터이니 그 때까지 떠나지 말고 기다리고 계시다가 당신이 하나님이신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렇게 치사한 요구를 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본문의 마지막 반응이 이렇습니다.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18절 하반절)무슨 말입니까? 기드온, 너의 부탁을 내가 들어주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알았다는 말이 아닙니까? 기다려 주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좌지우지 되지 않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그 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속도 배알도 다 포기하신 나약한 하나님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감을 낮추셨을까요? 묵상하다가 너무나 존귀하고 은혜로운 한 가지의 사실을 깨닫고 나니 하나님의 일하심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생각을 바꾸시는 단 한 가지의 예외 조항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과 의지를 바꾸시는 유일한 상황이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수용하셨습니다. 그를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도구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너 돌아올 때까지’의 전

제를 갖고 턱 괴고 기드온을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 진짜 하나님 맞으신가? 그러다가 괜히 눈물이 핑 돕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시고 오직 영혼 구원의 일념으로 기드온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 바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신 것 때문에 눈물이 고입니다.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으신 하나님, 그리고 무한 사랑으로 철없는 나를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바로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여러분의 하나님 이십니다. 청파 교회 김기석 목사께서 쓴 ‘오래된 새 길’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픈 어느 날,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는 그 날,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신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는 삶이다.”(p,237)사순절 기간입니다. 주님의 아파하심은 우리를 기다려주심으로 절정에 다다릅니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다려주신 주군의 은혜에 깊이 잠기는 저와 독자들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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