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날 (베드로전서 3:13~22)

  • 입력 2018.03.15 10:5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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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구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면 누구나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물의 세례는 표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의 나를 죽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제 우리의 삶은 주님의 생명과 연합된 삶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경험해 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홍수를 이길 수 있었던 유일한 방주를 건축한 노아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홍수에 대비해 노아의 방주보다 더 튼튼해 보이는 배를 준비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기술을 의존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 것도 하나님의 홍수에 맞설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두고 의지해서 배를 건축하였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만이 물에 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의 세례’는 단지 표에 지나지 않음을 언약궤와 관련된 사건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의지해서 언약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궤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수많은 기적과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요단강의 물이 갈라졌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주었으며, 모든 재난과 환란 속에서도 구원과 생명을 주었습니다. ‘이 언약궤야말로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가 아니냐!’사람들은 이 언약궤라면 무조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것이라는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언약궤를 가져오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보내기도 했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맨 처음 언약궤를 가져오는데 실패하였고, 블레셋과의 전쟁 역시 역사상 유례없는 대패를 당하고 죽음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약궤 자체가 아니라,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모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목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백 마리를 채우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알기 때문에 찾는 것입니다. 가시덤불 산과 모든 길을 다 돌아다니고, 설령 절벽 끝에 매달려있는 양이 나의 양이라도 목숨을 걸고 찾아와야 하는 것이 목자라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는 얼마의시간이 걸리든 그 아들이 돌아올 줄 믿고 모든 것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은 잃어버린 양처럼, 탕자처럼 하나님 앞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고 대신 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 위대한 1%의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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