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내하심으로(사사기 6:22~24)

  • 입력 2018.03.30 10:0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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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jpg
 
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시인 박노해가 ‘다른 길’이라는 시집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p,69)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모저모의 조건을 걸면서 응답하지 않으려는 시도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기드온의 불신앙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눈높이를 낮추시고 기드온의 입장에서 참고 기다리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상에게 드리는 방법과 똑같이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하는 일들을 자행하는 불손함도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참으시며 기드온이 요구한 것에 반응해 주셨음도 살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도구로 기드온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까지 큰 은혜를 주셨건만 오늘 본문을 보면 기드온은 또 다른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부름을 교묘하게 비껴가려는 얄팍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무슨 말입니까? 기드온은 또 하나의 변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을 보았기에 자신은 이제 죽게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변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출애굽기 33:18~23절의 내용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대입해 보면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한 바로 이 대목을 근거해 나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할 수 없다는 에두른 표현을22절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과 나는 구별된다는 것을 알리시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에게 행하신 주님의 말씀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놀라운 파격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기에 이제는 나는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두려움에 빠진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은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드온에게는 거두어들이신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너는 나를 보았지만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기드온에게 파격 무드로 접근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재 강조하지만 기드온을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할 도구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행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기드온은 드디어 하나님께 다음의 영적 반응을 행합니다. 본문24절을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단을 쌓았다는 구약적인 표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의 표현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렇게 뺀질대던 기드온이 드디어 단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낸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 사랑을 행함으로 보인 것입니다. 24절에서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입니다. 우리나라 개역 개정판 성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for the Lord) 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to the LORD)가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들이 이미 살핀 것처럼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여 가능하면 하나님의 소명을 피하여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반대쪽으로 달아나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을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 반대쪽에서 하나님 쪽으로 시선을 돌려 하나님께로 나아가 단을 쌓았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반전이지 않습니까? 바로 이 본문을 통해 우리 독자들이 함께 공유할 은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나님의 인내함이 불신의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는 가장 결정적인 영적 자양분이 되었다는 교훈입니다.

재 강조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참으심이라는 사랑으로 하나님 쪽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정답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7절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난과 부활의 절기입니다. 더 더욱 주님의 참으심과 인내하심이라는 사랑의 클라이맥스를 경험하는 행복한 주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시인 박노해가 ‘다른 길’이라는 시집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p,69)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모저모의 조건을 걸면서 응답하지 않으려는 시도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기드온의 불신앙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눈높이를 낮추시고 기드온의 입장에서 참고 기다리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상에게 드리는 방법과 똑같이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하는 일들을 자행하는 불손함도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참으시며 기드온이 요구한 것에 반응해 주셨음도 살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도구로 기드온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까지 큰 은혜를 주셨건만 오늘 본문을 보면 기드온은 또 다른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부름을 교묘하게 비껴가려는 얄팍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무슨 말입니까? 기드온은 또 하나의 변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을 보았기에 자신은 이제 죽게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변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출애굽기 33:18~23절의 내용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대입해 보면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한 바로 이 대목을 근거해 나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할 수 없다는 에두른 표현을22절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과 나는 구별된다는 것을 알리시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에게 행하신 주님의 말씀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놀라운 파격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기에 이제는 나는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두려움에 빠진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은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드온에게는 거두어들이신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너는 나를 보았지만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기드온에게 파격 무드로 접근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재 강조하지만 기드온을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할 도구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행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기드온은 드디어 하나님께 다음의 영적 반응을 행합니다. 본문24절을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단을 쌓았다는 구약적인 표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의 표현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렇게 뺀질대던 기드온이 드디어 단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낸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 사랑을 행함으로 보인 것입니다. 24절에서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입니다. 우리나라 개역 개정판 성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for the Lord) 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to the LORD)가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들이 이미 살핀 것처럼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여 가능하면 하나님의 소명을 피하여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반대쪽으로 달아나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을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 반대쪽에서 하나님 쪽으로 시선을 돌려 하나님께로 나아가 단을 쌓았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반전이지 않습니까? 바로 이 본문을 통해 우리 독자들이 함께 공유할 은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나님의 인내함이 불신의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는 가장 결정적인 영적 자양분이 되었다는 교훈입니다.

재 강조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참으심이라는 사랑으로 하나님 쪽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정답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7절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난과 부활의 절기입니다. 더 더욱 주님의 참으심과 인내하심이라는 사랑의 클라이맥스를 경험하는 행복한 주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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