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용기를 갖고 주기

  • 입력 2021.01.28 10:52
  • 기자명 컵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희철 목사.jpg

박희철 (함께하는 가정운동 운동본부 이사장)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두려움이 없는 자세로 인생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 용기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이 굳세고 담대한 마음가짐’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일상의 코로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주변에 환경들이 많이 변화되었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친구들과 교우들과의 만남이 제한되었고, 가야 할 장소도, 머물러야 할 곳도 제한되었다. 그로 인하여 두려움을 통한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쌓여서 자주 만나는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믿음의 가정에 부모들은 자신을 비롯하여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용기를 주어야 한다. 신앙적인 용기는 무조건적으로 적극적으로의 인간적인 무모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말씀에대한 확신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상황과 여건에 관계없이 용기를 가져야 할 이유이다. 신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용기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신다. 용기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실 때 담대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다윗은 믿음과 용기로 쓰임을 받았고(삼상17:45), 개인적인 위기도 넘겼다(삼상30:6). 세상에서도 용기 있는 사람이 영향력을 끼친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기독교 가정에 부모들은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인 용기를 가져서 자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다윗을 비롯하여 성경과 기독교 역사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담대하며 용기가 있었다. 구약의 여호수아(수10:25), 기드온(삿7:11), 다니엘(단6:10~23) 등과 신약의 사도바울을 비롯하여 사도들(행4:31~33), 초대교회의 폴리갑과 교부들도 담대한 모습을 보였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용기로 나타나며 용기는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실한 신앙으로써의 삶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명령은 항상 ‘담대하라’로 시작된다(수1:7). 이는 현실 속에서 처해진 자신의 처지와 주변 환경에 집중하게 되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 부모와 자녀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시31:14). 용기는 믿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한다. 사탄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리고 포기하게 한다. 때로는 귀한 생명을 포기하게도 한다.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탄은 두려움을 통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포기하는 자기 결정권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세상을 미혹케 한다. “내가 내 몸을 알아서 한다는데, 왜 남들이 참견이냐? 이건 인격 모독이다. 인권 침해다”라고 왜곡된 주장을 하는 모습을 많이 접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믿음이란 평소에 필요한 것이지만 신실한 믿음은 “고통 가운데 처했을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이다. 진정한 믿음은 고통을 지나 부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서부터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기까지 진정한 용기가 필요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신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는 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분의 뜻을 발견하여 순종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탄과의 싸움에서도 담대하게 대처하셨다(마4:11). 외식하며 지식이 풍부함으로 자랑하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게도 담대하셨으며,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거머쥐고 있던 로마의 압제와 총독에게도 담대하셨다. 항상 거리낌 없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셨고(요8:42)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까지도 담대하셨다.

예수님의 용기는 하나님에 대한 반석과 같은 굳건한 신뢰에서 비롯된 진정한 용기였다. 최근 ‘일상의 코로나 시대’에 “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용맹”으로 만용을 부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만용은 사단이 기뻐하는 것이다. 사단은 왜곡된 분별력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왜곡된 분별력으로 정의와 공정을 외친다. 가정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부모라는 자체만을 강조하여 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용맹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은 자녀가 교회를거부하거나 떠나는 이유를 분별력 있게 관찰해야 한다. 나는 다니엘처럼, 에스더처럼 신실한 믿음으로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고, 담대하게 나아가는가. 아니면 분별력 없는 말과 행동으로만 용을 부리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부모 자신 스스로 말씀 안에서 묵상을 해보아야 한다. 이는 부모를 향한 자녀의 반응에서 볼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 두려움이 없는 자세로 분별력으로 인생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 기독교 가정에 필요한 용기다. 기독교 부모들은 ‘부모의 스토리는 자녀의 스토리’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주 안에서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자녀들에게 인생 여정에 선한 스토리로써의 영향력을 주는 양육을 해야 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