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만나 그 말씀으로

  • 입력 2015.02.05 16:4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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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중 목사 (한국독립교회 선교단체연합회 목회국장)
[프로필]◈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갇혀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 주시고 광야 40년을 경험하게 하시는 동안 매일 아침마다 먹을 것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출16:36) 큰 노력 없이 오직 아침마다 이미 뿌려져있는 ‘깟씨 같고 진주같이 흰 것들’을 거두어 먹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것은 기적이고 오묘한 ‘꿀 섞은 과자’의 맛이었습니다(출16:31)오늘 아침에 거두어들인 만나는 어제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난 밤,밤이슬이 내릴 때에 함께 내려온 새로운 만나입니다(민11:9).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만나는 매일의 생명을 잇는 양식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과정에 단순한 광야의 생활에 싫증을 내며 더 자극적인 맛이 없을까 마음에 새로운 자극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모은 만나들을 서로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어 ‘기름 섞은 과자 맛’(민11:8)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런 자극의 시작은 그들 중에 섞여 살고 있던 다른 인종들(출12:38)의 탐욕과 유혹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꿀 섞은 과자 맛의 은혜를 버리고 고기가 없다는 불평을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의 힘든 시간들이 더하여 가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육체적 고통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만나를 하찮은 음식(민21:5)이라고 여기며 싫어하였습니다. 만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맛도 그 모양도 그 크기도 모두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만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아침마다 거두어 먹을 수 있도록 내려주신 만나는 이스라엘의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신비한 하늘의 공급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금씩 그 맛을 스스로 바꾸었고 마침내 만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마음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변하지 않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변한 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에 대하여 점점 감격을 잊어버리고 감사의 마음을 더럽히고 있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순수하던 마음에 이것저것 조건이 붙기 시작합니다. 자극적인 것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만나 그 자체의 맛보다 사람들 자기들이 만들어 낸 맛을 즐거워하다가 나중에는 하찮은 것으로 대하고 맙니다.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복음은 생명을 전하는 절박한 은혜의 공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 그 자체의 진리의 맛을 감격하지 않고,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맛을 찾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말씀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지적하고 계십니다.(계2:5) 만나를 만났던 처음 사랑, 꿀 섞은 과자의 맛을 감격하던 그 첫 마음을 버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공동체로서의 한국 교회에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었고 교회에 부딪혀 온 많은 고난과 시험의 도전들을 잘 이겨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은 처음의 그 마음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꿀 섞은 과자를 기름 섞은 과자로, 하찮은 식물로 여기는 화석(化石)같은 마음이 되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목사와 교회리더들에게도 이 말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의 행위로 돌아가야 합니다.(계2:6) 말씀의 감격을 잃어버린 목회, 부르심의 소명을 놓아버린 목회자는 이미 목회 현장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임의로 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고 가마에 삶아 기름 섞은 과자의 맛을 만드는 설교 강단의 타협을 버려야 합니다. 처음 사랑그대로 복음만을 순수하게 전파하는 행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한국교회의 회복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다한 잡족들이 하는 불평과 그들의 설득에 타협한다면 목회를 하찮은 노동으로 여기는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만나 그 말씀으로 돌아가 목회와 목회자의 영성을 다시 세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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