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교과서(7-1)

  • 입력 2015.04.02 14:0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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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기 목사
[프로필]◈ 한동교회

 

제 1 부 첫째 기둥은

 

예수 1차 오심-일곱 봉인 떼어내기다

필자가 내세운 첫째 기둥은 하나님의 오른 손에 들고 있던 그 두루마리를 펼쳐보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일곱 개의 봉인을 제거하는 부분이다. 일곱 봉인이란 일반적으로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서류(하나님이 두루마리에 쓰신 비밀문서)가 무단으로 개봉되거나 취급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 봉하는 곳에 도장을 찍거나 또는 도장이 찍힌 용지 따위를 부착하는 것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지우거나 제거 한다는 것보다 뜯어내는 것으로 도장이 찍힌 용지를 떼어 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첫 번째 기둥으로 설정한 일곱 봉인 떼기에 대한 정통신학자들의 해석은 하나님의 진노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서막이라고 한다. 6장에 나오는 두루마리에 봉인(封印)한 일곱 인 떼어내기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다음과 같이 4가지 해석만 가지고 모순점을 짚어보고 설명하려한다.

 

1) 과거론적 해석(preterist interpretation)

일곱 개의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판결문이며 그 개봉을 하나 둘 제거할 때마다 겪는 환난은 유대와 로마 대결전쟁 시에 유대인들이 겪는 위기라고 한다.

2) 역사론적 해석(historical interpretation)

두루마리의 개봉은 로마 제국의 멸망의 시작이며 도미티안(AD96년)의 통치에서 시작되며 고트족과 반달족의 침입으로 로마 제국의 쇠망을 계시한다고 한다.

3) 미래론적 해석(futuristic interpretation)

두루마리의 내용과 그 개봉은 교회의 휴거와 대환난의 시작이라고 본다.

4) 이상주의적 해석(idealistic interpretation)

두루마리와 그것의 개봉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사이클 방법인 전쟁과 순교,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록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렇게 ‘일곱 봉인 제거하기’ 한 사건만 해도 각각 다른 해석을 한다. 그러므로 독자들, 일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어느 것이 옳은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독자들은 그 중에 3번이 마음에 든다. 혹은 안 든다. 4번이 괜찮은 느낌이 든다. 혹은 안 든다는 식으로 결정을 짓는다. 조금 더 진보한 이들의 해석은 거기에 자기의 현실 감각이나 직감으로 조금 더 해석을 첨가하여 왔다. 이 첨가하는 것이 옛 사람의 해석에 근대적인 해석과 또 현대적인 해석을 더 플러스하고 자기 직감까지 첨가하게 되어 요즘 요한계시록의 주석이나 강해서는 500페이지이상 되는 책 7~8권씩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설교해야할 목회자들은 이 많은 해석서 들이 큰 짐이 되고 요한계시록은 고작 22장이고 404절에 24쪽밖에 안 되는 성경 본문도 읽어볼 시간도 모자라고 또한 너무 방대하여 아예 거들떠보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이 많은 학설과 첨가된 내용이 점차 정통신학화가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큰 이단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눈여겨보고 또 자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벗어나 보려고 한다.“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으로 봉하였더라.”(5:1) 그럼 봉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대인의 왕 예수를 죽여 달라고 고소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고 마침내 예수를 죽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내가 사흘 후에 살아나리라’는 생전의 하신 말씀이 마음에 걸려 총독 빌라도에게 청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간 후 무덤이 비어있고 그의 말처럼 그는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면 이전보다 더 큰 미혹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무덤에 경비를 세우길 요구할 때 로마 총독 빌라도는 너희에게도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고 허락했다.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마27:66)

빌라도 총독의 권한이나 대제사장의 권세 없이는 아무도 무덤을 열지 못하게 “큰 돌로 무덤 문을 막고 인봉”하였다. 여기 인봉한 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인봉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 당시 최고의 권력자 로마 총독의 권한이나 유대인의 왕 헤롯이나 유대교 종교 총수인 대제사장의 허락이 없는 한 누구라도 그 인봉을 제거하면 감옥 내지 사형에 처할 지엄한 권한이 담긴 봉인이었다. 그때도 예수님은 세상 권세뿐만 아니라 사망 권세까지 이기신 하나님의 권세로 인봉을 떼어내고 돌을 굴려내고 무덤에서 나오셨다.

 

어느 권세도 떼어낼 수 없는 그 봉인을 예수님은 무덤 권세,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제거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또 하나 발생했다. 요한계시록 4장은 하늘의 보좌가 보인다. 하나님이만유의 권세를 장악한 지엄하신 분으로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이어서 5장은 그 하나님이 권능의 오른손에 둘둘 말아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빨간 딱지를 붙인 두루마리 책을 들고 계신다. 그런데 문제는 그 두루마리에 안과 밖으로 글이 기록되어 있는데 펼쳐 볼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언제 기록하셨는지 모르나 만유의 권세로 아무도 펼쳐 보지 못하게 봉인을 해놓으셨기 때문이다.

 

이 봉인을 뗄 수 있는 자격은 ‘사망 권세를 이긴 자’만이 뗄 수가 있다.(5:5) 그 때 힘 있는 천사는 선언한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5:2)라고 온 우주에 광포하고 찾으려 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볼 때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5:3)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루마리에 봉인한 인을 떼어낼 자가 아무도 없어 사도 요한이 울고 있을 때,“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5:5)장로가 위로해 주었다. 그 위로는 그 인을 떼실 수 있는 권한을 인정받으신 분이 있다는 말이다. 그 능력자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구주이시라는 위로의 말씀이다. 이 어린양이 그런 권한을 보유하신 것은 사망 권세와 싸워 이기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또한 자기 사람들의 존귀하고 영화로운 삶까지 책임을 지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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