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목회하는 교회

  • 입력 2014.08.28 15:18
  • 기자명 신성남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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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친구의 손에 이끌려 처음 출석한 교회는 서울 변두리 주택가의 한 허름한 상가 건물 꼭대기에 세 들어 있던 작은 개척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겨우 두 명이 동시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비좁고 높은 계단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고 교육관은 꿈고 못 꾸고 그저 예배실 하나만 달랑 있던 교회입니다.
십자가만 세우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던 70년대 초였건만 그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다른 교회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신실되고 충성된 목회자와 제직들이 다수 있었지만, 이 작고 불편한 예배당에서는 근 10년 동안 장년 교인 수가 별로 늘지 않았습니다. 일 년에 평균 8명도 못 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개척교회’라는 명판을 떼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건물이 목회하나
그런데 이런 상황을 순식간에 바꾼 것은 ‘교회 건축’이었습니다. 온 교우들이 힘에 지나도록 헌금을 하여 교육관과 식당까지 갖춘 약 350명이 예배할 수 있는 3층짜리 예쁜 교회당을 신축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교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직들은 ‘믿음대로 채워 주신다’고 좋아하셨지만, 필자는 너무 허탈했습니다. 신도들과 목회자가 오랜 기간 노력해도 쉽게 풀지 못한 난제를 건물 하나가 간단하게 해결한 것입니다. 전도와 관계없이 매달 새로운 가정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인근 지역의 한 젊은 목사님은 용감하게 자신의 집을 팔아 건축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건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니 그 약발이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이런 통 큰 건축 결과 교세가 급성장하여 지역에서 주도적인 대형교회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 무명의 목사님은 꾸준히 신분 상승을 얻으셨고 나중에는 언론에 뇌물 시비까지 일으키며 교단과 기독교 단체의 요직을 여러 번 차지해 거물급 인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평소 행적으로 볼 때 이분이 아들 목사에게 담임직을 세습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교단이나 신학교 그리고 기독교 단체 등 이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부정 논란과 말썽이 없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본래 집을 팔아 한 건축 헌금이 진정 교회에 바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가업에 장기 투자를 한 것인지 혼동을 줄 정도입니다.
대전 지역의 어느 교회 또한 교인 수에 비해 너무 거대한 교회당을 지어 처음에 많이 염려했는데 후일 오히려 큰 득을 보았습니다. 서울의 한 개척교회는 아예 목회자가 자비로 자금을 조달하여 아담한 교회당을 짓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교인이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하여튼 이런 상황은 멋진 건물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화려한 목회 성공을 꿈꿀 수 있는 모험적 토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교회당 건물의 힘은 정말 막강합니다. 정통인지 이단인지도 별로 관계없습니다. 수완이 좋든 믿음이 좋든 하여튼 건물만 잘 세우면 이단은 물론 사이비도 쉽게 번창합니다. 담임목사가 누구인지도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일단 건물이 번듯하고 적당히 설교를 잘하면 순진한 신도들이 알아서 자리를 채워줍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도보다 우선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한 민초들에게는 무당처럼 무조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노래하는 목사가 최고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입학 경쟁이 없는 군소 신학교나 무인가 신학교 그런 것도 별로 문제가 아닙니다. 돈으로 적당히 학력과 경력을 새로 세탁하면 박사학위까지 가능하여 나중에 보면 외견상 거의 다 엘리트 목사로 둔갑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천의 미꾸라지가 용으로 변신하고, 동네 촌닭이 봉황 행세를 하는 놀라운 이적이 그치지 않는 곳이 바로 작금의 한국교회입니다.
교회 건축 자체가 딱히 나쁜 일도 아니고 또한 현실이 이렇다 보니 보통 목회자들은 교회 건축이나 증축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무리해서 빚을 지더라도 일단 짓고 보자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거액의 교회 재정이 선교나 구제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은행 대출금과 이자에 소모되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과도한 비용 부담으로 말미암아 파산하거나 교회당을 파는 일마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 경매로 나온 종교 건물만 해도 거의 3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매자가 별로 없어 낙찰률은 겨우 15%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금융권에서 대출한 금액만 따져도 9조원이 넘고 매달 약 450억 원의 헌금이 이자로 지급됐습니다. 교인들의 피땀 어린 헌금이 고작 이런 소모적인 땜질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성경에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을 엉뚱하게 거꾸로 적용해서 열심히 이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 돈이면 해마다 수천명의 선교사를 지원할 수 있고 또는 미자립 교회 수천 개를 즉시 자립시킬 수 있습니다.반면에 교회 분립을 통하여 목회 본연에 충실하려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교회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교회 대형화에 반대하며 분립 개척을 결정한 강직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교회들이야말로 건물이 아니라 신도들이 목회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건물 신앙의 그늘
물론 교인들과 목회자의 뜨거운 헌신 없이 교회가 건물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교회 성장의 이면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한 수많은 신도와 직분자의 희생적 사역이 있습니다. 또한 경제 성장에 따른 사회적 환경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숫한 조건이라면, 교회당 건물이 교인을 모으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건축 능력으로 목회 능력을 평가할 정도로 건물이 교세 성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사가 잦은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새로 이주하는 신도들은 피곤한 개척교회나 평범한 중소형 교회를 기피하고 이왕이면 시설 좋고 프로그램이 다양한 대형 교회를 선호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문제는 그런 편향성이 너무 지나쳐서 현재 한국 기독교인의 무려 과반수 이상이 불과 1%도 안되는 극소수의 대형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집 앞에 있는 작은 교회들을 외면하고 굳이 멀리 있는 중대형 교회를 찾아갑니다.
이처럼 종합적인 경쟁력에 있어서 작은 교회는 큰 교회를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대형 교회들이 암세포 같은 무한 증식을 스스로 자제하지 않으면, 원하든 원치 않든 저절로 구조적인 양 도둑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현실적인 여건입니다. 그러나 교권의 단맛에 깊이 중독된 귀족 목회자들은 이를 규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 대부분은 한 번 잡은 권력을 절대로 놓지 않고 더욱 확장하려 합니다.
아울러 많은 교회에서 교회당 건축을 독려하기 위해 흔히 애용하는 ‘성전’이라는 말도 큰 문제입니다. 차라리 무식해서 그런 용어를 사용한다면 동정심이라도 들 것입니다. 이는 성경의 기본 상식을 알거나 신학교 문턱만 넘어도 잘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소위 제법 배웠다는 중견 목회자들이 이런 사이비 수준의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며 억지를 부립니다.
신약 교회에서는 신도들 자신이 성전입니다. 예배는 제사가 아니고,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고, 설교 강단은 제단이 아니고,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은 돈이나 부귀영화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신도들의 신앙적 열정을 자극하고 또한 교회당을 ‘복 받는 장소’로 각인시키기 위해 단순한 벽돌 덩어리를 성전이라고 미화하고 있습니다. 마치 과거 이방 출신의 극히 불신앙적인 왕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불순한 목적으로 화려한 성전을 지었던 것처럼 한국의 많은 교회 역시 같은 수법으로 신도들의 마음을 훔치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단이나 사이비가 기승을 부리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위 정통이라는 교회들의 변질입니다. 이들은 진리를 왜곡하여 교회를 기복화, 종교화, 그리고 상업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단 하나의 건물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단 하나의 종교 기관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따르는 양들에게 돈을 요구하신 적은 더욱 없습니다. 그냥 그분의 삶 자체가 진리이고 사랑이고 복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관습적인 종교의 틀에 가두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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