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하나님(사사기 6:36~40)

  • 입력 2018.06.28 11:2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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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세인교회) 

기드온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독자들과 함께 살펴본 앞선 글에서 보았지만 기드온은 정말로 대책이 안 서는 형편없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믿음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형편없는 기드온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설득 또 설득하셨습니다.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격려하셨습니다. 표징을 보여 달라고 떼를 쓰는 기드온의 요구에 하나님의 자존감을 다 버리시고 그에게 표징도 보여주셨습니다. 원대로 표징을 보여주었더니 이제 기드온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어 전쟁에 나가지 못하겠다는 어리광을 부리며 생떼를 피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달래셨습니다. 바알의 단을 훼파 했을때도 그를 아버지 요아스를 동원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를 만드시기 위하여 성령의 옷을 입히시면서 응원하셨습니다. 기드온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던 적들이었던 아비에셀의 오브라 사람들을 움직이셔서 그들을 전쟁에 나갈 동역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는 믿음을 갖고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37절이하를 보면 기드온이 하나님께 양털을 통한 기적을 보여 달라는, 아연실색하게 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놓을 테니 만일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려면 이 양털에만 이슬이 머금게 해주시고 나머지 타작마당은 마르게 해 달라는 유치원 학생과도 같은 발상을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하나님은 기드온의 유치한소원대로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한 번 더 요구를 합니다. 반대로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타작마당에는 이슬이 내리게 해 주시고 양털은 마르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드온의 요구에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본문 마지막 40절을 보겠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이 구절을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심정으로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쓸 만한 사람이 그렇게도 없으신 분인가? 이런 가당치도 않은 자를 쓰시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나님은 진짜로 자존심도 없으신 것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자에게 집착하셨을까요? 글을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화가 났지만 주어진 텍스트를 통해 교훈을 찾으면서 금방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기드온이 제 삼자로 보여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로 여겨졌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소시민적인 태도를 보이신 것에 대하여 화가 났지만, 깊이 묵상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렇게 유아적인 발상을 하면서 하나님께 떼를 쓰며 심지어 하나님께 이렇게 안 해주시면 나는 결코 미디안에게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던 기드온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솔직하고 과감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기드온보다 훨씬 더 한 놈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수차례에 걸쳐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수차례가 아니라 수백 번을 그렇게 하나님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던 자임을 직시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바로 나임을 인정하고 나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집착하시는 그 일련의 참으심과 인내하심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로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참 바보이십니다. 그렇게 집착하지 않으셔도 될 만한 벌레 같은 나인데 하나님은 나를 그리 보지 않으시고 설득하시고 또 설득하시고 심지어는 모욕을 당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으셨으니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바보가 되기를 결심하셨을까요?

●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부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그래서 이렇게 갈파했는데 음미하면 할수록 은혜가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위해 불러 주신 은혜. 둘째, 나 같은 죄인과 함께 하시고 같이 일하자고 요구받은 은혜이다.”그는 계속해서 이 두 가지의 은혜를 천명한 뒤 기막힌 촌철살인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바보(바로 보시는)이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주군이심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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