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다녀와서

  • 입력 2018.11.08 13:1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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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금년도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해이다. 나와 아내가 환갑을 맞이하는 해이다. 목회를 시작한지 30년이 넘었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살아 온지도 30년이 넘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소속된 지방에서 단체로 성지순례나 어디를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내와 둘이 여행은 처음이다. 아들 두 녀석이 돈을 모아 환갑여행을 보내주어 베트남 다낭을 다녀왔다. 기간만 정해 주니, 모든 일정 준비를 아들이 해 주었다. 처음 가는 베트남이지만 아무런 사전이해 없이 도착했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데로 몇 군데 관광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우리 선조인 선비들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때, 가이드가 여행지로 이동하면서 이야기하는 베트남의 역사가 흥미로웠다. 공산당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 이전의 베트남왕 정사 말이다. 마지막 황제의 무덤과 우리나라의 종묘와 같은 곳도 관광을 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호이안’ 구시가지와 몇 군대의 관광지는 인상적이었다. 그런 관광지 가운데, 바구니 배를 타면서 강을 한번 돌아보는 코스도 있었다.

 

가이드의 ‘라이따이한’ 이야기와 월남전 당시 ‘학살사건’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바구니 배를 태워주는 베트남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이 주변의 풍광을 즐겁게 보이게만 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여행자들을 위해서 여러가지 묘기와 ‘내 나이가 어때서’ ‘뿐이고’를 부르면서 목이 터지라고 열창을 하는 모습이 마음 한편 짠하기도 했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베트남도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전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같이 왕이 지배하는 나라였고,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묘와 같은 곳을 갔을 때나 마지막 황제의 무덤을 갔을 때에도 한문으로 쓴 비석과 표지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조선시대 대궐과 같은 곳은 중국의 축소판 ‘자금성’ 이라고 들었다. 오래전의 중국, 한국, 베트남은 서로 연관이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연관된 자료를 찾아보던 중, 베트남견문록을 찾았다. 지봉(芝峰) 이수광(1563~1629)의 『17세기전쟁 포로의 베트남 견문기』이다. 원제는 『조완벽전(趙完璧傳)』이다.

 

조완벽(趙完璧)이라는 사람은 진주의 선비이다. 그는 스무 살 때인 정유년(1597년) 왜란 당시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갔다. 그는 문자를 잘 앎으로 왜 사람은 그를 데리고 세 차례안 남국(베트남)을 갔다. 그가 안남국 흥원현에 이르렀다. 흥원현(興元縣)은 그 나라의 수도였다. 나라는 절반으로 나뉘어 둘이 되었는데, 하나는 안남국(安南國)이고 다른 하나는 교지국(交趾國)이다.“이 나라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머리 풀고 맨발로 다녀 신발을 신지 않았다. 비록 높은 관리라도 그러했다. 어른은이(치아)에 검은 칠을 했다. 장수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노인은 머리가 희어졌다가 다시 누렇게 되더니 어린아이처럼 이가 돋았다. 이른바 황발아치(黃髮兒齒)라는 것이다. 그 나이를 묻자 백이십 세라 했다. 백 살을 넘은 사람이 종종 있었다. 또 풍속이 독서를 숭상하는지라 시골 마을까지도 곳곳에 학당이 있어 책 읽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아이들은 모두아동학습서인 몽구(蒙求)와 양절반씨론(陽節潘氏論)을 암송하거나 혹 시문을 익혔다. 글자를 읽는 법이 입을 모아 내는 합구성을 쓰는지라 우리나라의 한자음과 서로 비슷했다.다만 종이가 가장 귀해서 서적은 모두 중국 책뿐이었다. 또 조총 쏘기를 좋아하여 어린아이까지도 능히 잘 쏘았다. 이곳은 몹시 따뜻해 이월이나 삼월에도 수박과 참외 같은 과일이 난다. 무논에서는 때를 가리지 않고 심고 갈고 한다. 삼월인데도 새로 막 갈기도 하고 다 익어 가는 것도 있으며 추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날씨는 낮은 덥고 밤은 추웠다. 바닷가 지역인데도 해산물은 풍부하지 않았다. 과일은 귤과 여지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곶감을 주었더니 무엇인지 잘 몰랐다. 늘 빈랑을 먹는데 푸른 잎에 싸서 함께 먹는다. 무엇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중략- 뽕나무는 매년 벼나 보리처럼 밭을 갈아 심는다. 뽕잎을 따서 누에를 먹이므로 비단이 가장 흔하다.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비단옷을 입는다. 갈증이 나면 사탕수수를 먹는다. 밥은 간신히 배나 채울 정도만 먹는다. 언제나 소주를 마신다. 침향 가루를연고처럼 만들어 얼굴과 몸에 바른다. -중략-

 

국왕은 코끼리를 칠십 마리까지 기른다. 외출할 때 코끼리를 탄다. 코끼리 중에는 사람처럼 무릎 꿇고 절하는 놈도 있다. 공작과 앵무 흰 꿩과 자고새 그리고 후추가 많다.”(『한국산문선』4.인용)패키지여행을 통해서 속속들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오래전의 견문기를 통해 베트남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게 되어 흥미롭다. 여행을 누가 그랬던가? 배움의 연장선이라고. 그렇다. 여행은 쉼표요. 또 다른 경험이요 배움인 것 같다. 환갑여행이 그냥 다녀오면서 ‘좋았다’ 라고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움을 가져다주어서 참 뜻 깊었다. 다음 여행이기다려진다. 또 한 번의 쉼표와 더불어 배움이 있기에. 그러면서 새삼 놀라는 것은 기록의 힘이다. 수 백 년 전 글을 통해배울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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